[Salon de Celine] 사랑이 궁금한 그대에게

존 에버넷 밀레이와 존 러스킨의 사랑과 우정에 대해
Celine
jwhaha@nate.com | 2020-11-21 08:38:58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 '오필리아'의 마지막 모습이다. 사랑을 잃은 상처로 지금 그녀는 생(生)과 사(死)의 기로(岐路)에 있다. 곧 생을 마감할 것을 알고 있는 그녀. 


그녀의 반쯤 뜬 눈은 애듯하며 공허하다. 자신이 선택한 죽음 앞에서 한 없이 힘을 잃은 몸은 물 위에 부유(浮游)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마지막으로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듯 보인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그대를 따라가고 있어요. 당신을 빨리 만나고 싶어요" 죽어가는 그녀의 몸 주위 꽃들은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필리아가 선택한 사랑을 위한 죽음이란 꽃과 같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의 소재가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림의 섬세함과 드라마틱한 죽음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미가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오필리아/존 에버렛 밀레이/72x112cm/1852/oil on canvas/런던테이트갤러리/그림출처:위키아트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영국 라파엘 전파의 일원인 '존 에밀렛 밀레이(Sir 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이다. '라파엘 전파(P.R.B-Pre-Raphaelite Brotherhood)'는 1848년 영국의 화가 로제티와 여러 화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이는 당시의 미술이 가지고 있던 아카데믹한 예술에 반항한 혁신적인 운동으로, 르네상스 시대 3대 화가 중 한 명인 '라파엘로(Raffaello1483-1520)'와 같은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사실적인 기법과 진실 그리고 자연의 영감을 중요시했으며,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화려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회화에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며 당시 도덕적, 문학적 규율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작품을 많이 제작하였다.


라파엘전파 소속 화가 '밀레이'는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이며, 사상가로서 장교였던 아버지 아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그림에 많은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11세에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한 후 재학 시절부터 모든 상을 휩쓸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그는 어린 시절부터 또래에 비해 매우 감수성이 풍부했으며 사물을 이해하는 審美眼을 가지고 있었다. 


1885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남작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1896년에는 영국의 왕립 아카데미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밀레이는 지금까지의 상황만을 본다면 짐작컨대 질곡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과감하게 도전해야 할 인생의 과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가장 친했던 친구의 부인을 사랑했던 것이다.


▲성 아그네스의 전야/존 에밀렛 밀레이/118.1x154.9cm/1862-1863/oil on canvas/런던테이트모던갤러리

/그림출처:위키아트

 

달빛이 창가로 들어와 온 방을 사랑의 기운으로 가득 채운 듯하다. 방안 정중앙에 한 여인이 서 있다. 푸른 옷을 입은 그녀의 겉옷은 지금 막 벗어 몸에서 미끄러지듯 흘러 내려가고 있다. 그녀의 속옷 사이로 여인의 우아한 몸의 형체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풀어헤친 머릿결은 마치 향기가 은은히 펴질 것만 같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모양은 자신을 옭아매던 것들을 다 풀어 버린 듯 이제 막 자신에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만큼은 자유롭고자 하는 여인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그림은 사랑의 기운이 가득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왠지 모를 외로움과 고요함 속에 밀려드는 적막함이 가득해 한편으로는 여인의 슬픈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방안을 가득 채운 부드러운 달빛은 그녀 내면에 자리한 슬픔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보인다. 


밀레이는 이 그림을 달빛이 풍성한 밤에 그렸다. 그것은 사실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손이 곱아 이 그림을 그리는데 애를 먹었으나, 이 그림을 제작하는데 불과 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모델로 그림을 제작해서 일까? 밀레이는 그림 속 여인을 한 없이 사랑스럽고 우아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으로 표현했으며, 그녀의 침잠해 있는 내면까지 꿰뚫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존 러스킨/존에밀렛밀레이/78.7x68/1853-1854/

oil on canvas/개인소장/그림출처:위키아트

밀레이는 존 러스킨과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존은 지질과 물리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그림 또한 밀레이가 존을 위해 직접 스코틀랜드의 자연으로 동행하여 그려준 그림이다. 이렇듯 가까웠던 사이였는데 왜 밀레이는 존의 아내를 사랑하게 됐을까?


존의 아내 이름은 ‘에피 러스킨’이다. 에피는 늘 긍정적인 성격과 재능 또한 뛰어나며 외모마저 우아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래서인지 밀레이와 존 그리고 에피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서로에게 예술적인 힘을 불어넣어주는 동지애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밀레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이 그 부부에게는 있었다. 부부간의 문제는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만의 문제일 수 있지만, 에피에게는 해결할 수도 누구에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밀레이는 에피에게 그림의 모델을 제의를 했다. 삶의 외로움이 가슴 깊이 못 박혀 있던 그녀는 밀레이의 제의에 선뜻 응했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성 아그네스의 전야'(1862-1863)인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후 밀레이와 에피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어느 날 에피는 당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밀레이에게 털어놓게 된다. 남편인 존 러스킨은 자신과 결혼 후 단 한 번의 육체적인 부부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존에게는 여성에 대한 커다란 상상이 있었다. 그것은 고대 로마의 여신상과 같이 여인의 몸은 매우 매끄럽고 우아하며 체모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상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에피의 국부 체모를 마주한다는 것은 존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밀레이는 에피를 위로했다. 에피가 밀레이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밀레이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이후 에피는 만능 스포츠맨이자 늘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하며 지성미로 가득한 밀레이에게 점차 끌리게 됐으며, 밀레이 또한 우아한 에피에게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딸의 기이한(?) 결혼 생활을 알게 된 에피의 친정 부모는 딸을 친정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존과 에피는 이혼 재판을 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당시 크림전쟁의 뉴스를 뒤로 할 만큼 사회에 커다란 이슈가 됐다. 


존과 에피는 결혼 6년 만에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에피와 밀레이는 두 사람의 마음이 확실해 지자 결혼한다. 존은 두 사람의 결혼을 막기 위해 밀레이를 찾아와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은 영원히 변치 말자'고 이야기했다.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있던 에피와 밀레이는 세상의 많은 눈을 뒤로한 채 결혼했다. 이후 이들은 4남 4녀를 낳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랑을 나누고 살았다.
 

밀레이의 많은 그림들 속에는 자신의 가족들에 행복한 일상들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순간순간 포착해 세상에 많이 남겼다. 처음에 세상은 이 부부에게 남의 아내를 훔쳐와 그림을 그렸다고 쑥덕대기도 하며 두 사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밀레이는 그러한 세상을 향해 자신이 향하는 그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그림에 깊이 담아 그 절절한 사랑을 세상을 향해 아랑곳 하지 않고 표현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에피가 끝까지 자신의 절대적 비밀을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 돌이켜보면 에피는 밀레이의 지성과 깊은 신뢰에 의해 결국 언젠가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을까 싶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단 3초라고 한다. 사랑할 대상을 발견(애로틱한 표현보다 좀 동물적 표현으로 보인다)한 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시간이 단 3초라니. 자신의 인생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을 하는 시간이 겨우 3초에 결정된다는 사실에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인간의 몸에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어 자신의 대상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감각은 후각이라고 한다. 즉 냄새로 "그는(그녀는) 나의 사랑이 분명해!"라고 무의식적으로 후각을 통해 우선 인지한 후 뇌에서 그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심장의 근육운동으로 인해 온 몸으로 피가 급속하게 퍼지기 때문에 얼굴이 붉게 변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감성적인 사랑이란 것을 이론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했더니 애로틱함과는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있어 사랑만큼 희열과 절망을 주는 감정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는 평생 사랑하며 살아간다. 부모의 사랑, 자식과 사랑, 젠더 취향에 따른 사랑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많은 이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고결한 사랑 등 사랑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 쉽게 표현하면 저속한 취급을 받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상대를 의심하게도 한다. 이것은 나라마다 특성과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유교의 잔재가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남녀 사이에 자주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부부 사이나 가까운 사이에는 더 그러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진정으로 아끼는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얼마나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용기와 훈련이 필요하다. 아무리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사랑의 크기가 저 끝없이 펼쳐진 바다나 우주와 같은 크기라 할지라도 표현하지 않는 사랑에 어떤 의미가 있으랴.
 

사랑한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하며 말로 표현해 줘야 한다. 

 

아직도 내 몸에 남아 있는 감기 기운 덕에 며칠 전 아들이 나의 집을 찾아왔다. 

 

"엄마 몸은 괜찮아요? 그건 그냥 두세요 제가 할게요"라며 아들은 내 허리를 꼭 안아 준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울 엄마가 제일 좋아 그리고 사랑해요. 그러니 그만 아프세요" 

 

아들이 건넨 이 한마디가 나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했으며, 나와 손 잡고 소나무 숲을 산책했다. 

 

이렇듯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일상적인 표현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밀레이에게 에피가 자신의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밀레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삶을 바꿔나갈 용기가 스스로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에피의 용기로 인해 그녀는 평생 함께할 진정한 동반자를 찾았고 자신의 삶을 바꿔나갔다. 


어떤 이는 이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부부에게는 함께 하는 그 시간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서로를 놓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오늘 이 글을 빌어 아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고마워 나의 소중한 아들! 그리고 엄마도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아트에세이스트 Celine

[ⓒ 세계로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