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溫故創新]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news@segyelocal.com | 2021-02-18 08:43:34
▲'정인이 사건' 2차공판이 열리는 17일 오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입양부모의 살인죄 및 법정 최고형 선고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칼바람에 매서운 추위가 한참 이던 날, 16개월로 생을 마감한 입양아 정인이 학대살해 사건의 두 번째 재판이 열렸다.

 

법원 앞은 전국에서 몰려 온 엄마들로 가득하고 먼 곳이라 사정으로 오지 못한 엄마들이 보낸 100여개의 근조화환은 법원 담을 둘렀다. 

 

정인이의 양모가 탄 호송차는 엄마들의 분노의 몸짓으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팔짱을 끼고 바닥에 주저앉은 엄마, 호송차 앞에 누워버린 엄마,...


이들은 모두 정인이의 ‘진짜’ 엄마들이다. 

 

엄마들은 재판이 열리기 몇 시간 전부터 추운 날씨도 불사하고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비공개로 열린 재판에서 숨지기 전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한 증인들은 오열하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천사 같은 정인이를 학대한 양부모에 대한 전국 엄마들의 증오와 분노로 양부 안 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할 정도였다. 

 

이처럼 공감은 ‘동심(同心)’을 부른다.


‘두 사람이 같은 마음(同心)이면 그 예리함이 쇠를 끊는다’는 <역경>의 구절이 있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린 생명에 대한 사랑과 분노의 동심이 영하 10도의 추위도 끊어냈다.

 

엄마들은 나의 아이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미루어 정인이 사건을 보았다. 불쌍한 정인이는 이제 우리 모두의 아이가 되었다.


‘엄마’들은 어떻게 정인이 사건에 분노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정인이의 안타까운 처지와 상황에 공감하며 분노하는가? 

 

공자의 제자 중 공감의 화신인 인물이 있었다. 

 

고시(高柴)는 노나라 비읍을 다스린 사람인데,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 식물들의 마음과 공감하는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문호를 들어갈 때 남의 신발을 넘지 않았고,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을 지나칠 때 그 그림자를 밟지 않았고,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동물을 죽이지 않았고, 한창 자라는 초목을 꺾지 않았다.


고시는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마음을 공감하여 이처럼 행동하며 살았다. 

 

이러한 공감은 바로 공자의 서(恕) 사상이다.

 

서(恕)는 공감적 사랑을 뜻하며 인(仁)의 근본이다. 

 

엄마들의 강력한 행동은 바로 이 인(仁)과 서(恕)에 근거한 것이다. 

 

공감과 사랑은 인간에게만 있을까?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인간 뿐 아니라 동물들도 서로의 감정에 공감하며 아끼고 보호하여 살아간다고 했다.


다윈은 동물의 지능보다는 오히려 감정에 더 큰 관심을 쏟았다. 

 

특히 슬픔은 공감에 의해 잘 수용되고 전달된다. 개의 울부짖음은 동료들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동물들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놀이에서 그들은 자신의 신체적 무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동료들이 다칠까 보아 극히 조심한다.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뇌는 없지만 모든 세포를 동원한 감각으로 서로를 위하고 도우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정인이 양부모의 마음과 행위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언론 보도를 보며 경악한 일은 증인으로 출석한 사회복지사가 양모인 장 씨가 ‘정인이를 불쌍하게 생각하려 해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고 전한 일이다. 

 

한 번 더 찰스 다윈을 소환해 보자.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을 감정에서 찾았던 그는 동정심이 없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자연스런 괴물’이라고 칭했다. 

 

왜 그랬을까? 생명의 세계에는 공감이 ‘자연’이기 때문이다. 

 

공감으로 인한 분노인 ‘공분’ 또한 자연이 아닐까?

 

[ⓒ 세계로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