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겸임교수
편집부 기자
| 2019-08-12 08:52:45
▲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겸임교수
말복인 11일, 동물권 시민단체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집회를 열고 '동물 임의 도살 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말복에 개대신 수박을 먹자며 수박먹기 퍼포먼스도 했다. 

같은 문화권이라 그랬을까, 우연인 듯 북한도 개에 대한 발언을 했다. '청와대'에다가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것" 이라고 조롱을 했고,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며 우리 정부를 향해 "바보, 똥, 횡설수설, 도적" 등의 막말도 퍼부었다.

요즘 나라 안팎이 난리이다. 한반도 안도 시끄럽고 밖도 시끄럽다. 북한은 ‘개, 바보’ 운운하며 우리 정부를 욕하면서 연일 발사체를 상공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경제전쟁을 치르자고 하고 이 와중에 미국은 일본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계절은 삼복의 끝을 찍고 입추에서 처서로 옮아가고, 장마에 무더위에 태풍에 날씨도 정신없다. 우리는 우리대로 더위와 악에 받쳐서, 동족이고 우방이고 이웃이고 뭐고 간에 눈감고 귀막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튼 같은 민족인 북한이 한 말을 좀 들여다 보자. 

‘겁먹은 개’ 가 도대체 어떻다고? 개는 원래 늑대라는 야생동물이었지 않은가? 개와 인간이 함께 생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만년 전, 적어도 약 1만 4천년 전부터였다고 한다. 늑대는 기민한 감각을 지닌 추격자였고, 인간 또한 도구를 사용하는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늑대와 인간은 모두 가족공동체를 가지고 살았다. 협동해 사냥하는 인간이 거대동물을 얻으면 한 번에 다 먹어치우기는 힘들고 남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던 늑대가 우연히 인간이 남긴 음식을 발견하고 와서는 배를 채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늑대는 인간과의 관계가 유익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늑대는 인간이 남긴 음식을 먹기 위해 인간이 사는 곳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친화력이 좋은 늑대들이 자발적으로 가축이 됐다는 설이 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은 가축이 된 늑대(개)와 공생(共生)하게 된다. 개들은 인간으로부터 안식처와 먹이를 제공받고는 위험한 동물로부터 인간과 가축들을 보호하고 사냥을 돕기도 했다. 

인류는 개 뿐 만 아니라 다양한 가축을 길러 왔다. 

하지만 개는 어느 종보다 뛰어나고 우수하다. 인간의 말귀를 알아듣고 눈치도 빠른데다가 기르는 가축들을 보호하고 챙기는 일을 너끈히 한다. 이렇게 개는 인간이 혹독한 빙하기를 잘 살아남고 안정적으로 정착생활을 하도록 도왔다. 

유명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오디세우스의 충견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20여년의 모험을 거친 오디세우스가 변장을 하고 고향에 왔을 때, 유일하게 그를 알아본 것은 충견 아르고스뿐이었다. 하지만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를 기다린 것이 자신의 사명이었던 듯 주인과 재회하고는 바로 숨을 거둔다.

평안도 강서에 사는 한(韓)씨가 기른 충견 이야기도 있다. 가난한 한씨의 유일한 가족인 이 개는 평소에 시장 심부름을 할 정도로 영민했는데 결국에는 이 개를 탐낸 빚쟁이에게 끌려 가게 된다. 하지만 본래 주인인 한씨를 잊지 못하고 가시덤불 길 40여리를 하염없이 오가다가 지쳐서 죽고 말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개를 한씨집 마당에 장사지내곤 의구(義狗)의 무덤이라고 했다. (조선 말기 문신 이건창의 시를 정민 교수가 번역했다.)

이처럼 늑대 중에 친화력이 좋은 일부는 인간과 공생(symbiosis)하면서 개가 돼 오랜 세월 인류 문명과 함께했지만 대부분의 늑대들은 야생에서 남았다. 그러니 개와 늑대의 유전자는 아주 흡사할 수 밖에 없다. 

한낮의 태양이 지고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질 무렵을 ‘늑대와 개의 시간’ 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개와 늑대를 구별하기 어려운 시간이란 뜻이다. 

과연 무엇이 늑대와 개의 삶을 달라지게 했을까? 지구상 생물 중에 최고 능력자인 인간과의 친화가 주는 유익을 알아차린 덕에 개는 인간과 함께 많은 것을 누려왔다. 개들에게도 희생은 따랐지만 야생의 늑대와 비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같은 민족인 북한의 수뇌부가 남한 지도부를 일러 ‘짖어대는 겁먹은 개’라고 한 수 두었다. 전범(戰犯) 이웃은 속을 뒤집고 소위 우방(友邦)도 제 이익 챙기느라 바쁘다. 

개와 늑대의 시간,적과 동료를 알아보기 힘든 어스름한 공간 속에서 어떤 공생의 지혜로 살아남을 것인가? 

“가장 어리석은 자[下愚]는 최고로 지혜로운 자[上智]만큼이나 변화하기 힘들다” 는 공자(孔子)의 탄식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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