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이상화 ‘10폭 병풍’, 고향 대구로 온다

이 시인이 지인에 선물한 작품…소장 3남이 대구시에 기증
대구지역 중심 교류 예술인들 이야기 담겨…3일 공개 행사
류종민
lyu1089@naver.com | 2020-12-02 09:09:52
▲일제강점기 민족시인 이상화가 당시 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수묵화가인 서동균에 부탁해 민족지사 김정규에게 선물한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 (사진=대구시 제공)

 

[세계로컬타임즈 류종민 기자] 민족시인 이상화와 대구를 중심으로 교류하던 예술인의 이야기를 담은 병풍이 대구시에 기증된다.

이 병풍은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으로, 죽농 서동균이 행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병풍 마지막 폭에 '1932년 죽농 서동균이 글씨를 쓰고 시인 이상화가 포해 김정규에게 선물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서화 작품 중 이렇게 제작 연도와 얽힌 사연을 뚜렷하게 기록된 것도 매우 드문 사례다.

병풍 공개 행사는 오는 3일 오전 대구미술관에서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과 기증자 김종해(원 소장자 김정규의 아들)·이원호 이상화기념관 관장·최은주 대구미술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병풍 기증과 함께 감사패 증정이 이어진다.

병풍을 대구시에 기증한 김종해 씨는 이상화 시인으로부터 이 작품을 선물 받아 소장했던 포해 김정규의 3남이다.

김 씨는 생전에 선친께서 소중히 여겼던 병풍을 이상화의 고향인 대구에 기증하기로 하고 직접 대구시로 연락했다.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은 작품을 확인하고 기증 절차를 밟았다.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알려진 일제강점기 민족시인이며, 죽농 서동균은 근·현대기에 활동한 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수묵화가다. 그리고 포해 김정규는 합천 초계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며 1924년 대구노동공제회 집행위원이었다. 일본으로 유학, 주오(中央)대학·메이지(明治)대학 등에서 수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신간회에서 활동한 민족 지사다.


이 병풍이 제작될 1932년 당시 서동균은 30세·이상화는 32세·김정규는 34세의 청년으로 비슷한 나이의 또래였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던 대구의 젊은 엘리트로, 지금까지 이들이 친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자료는 없다.

 

하지만 이 병풍을 통해 이상화가 10폭이나 되는 대작을 부탁할 만큼 서동균과 막역한 사이였으며, 김정규는 이상화로부터 이런 대작을 받을 만한 사이였음을 입중해준 셈이다.


이상화는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 간사로 있으며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사건에 연루돼 대구 경찰서에 구금됐고, 활동 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김정규는 1920년대 항일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으며 신간회 활동에도 관여했다.

김종해 씨는 "선친이 '이상화 시인에게서 선물 받은 병풍'이라며 각별하게 생각해 병풍을 보며 금강산 구곡담 시를 직접 따라 쓰기도 할 만큼 좋아했다"면서 "선친이 타계한 후에도 집에 소중히 보관해오다 이상화 시인의 고향인 대구가 이 작품을 보관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던 중 마침 대구시에서 문화예술아카이브 구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락했다"고 기증 배경을 밝혔다.

이인숙 박사(서화연구가·경북대 외래교수)는 "이 병풍은 일제강점기인 근대기 대구가 보유한 최대의 자산 중 하나인 이상화의 국토에 대한 생각·교유 관계·문화 활동을 알려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이상화와 관련된 스토리로 근대의 문화 지형을 충실하게 확장하고 근대기 대구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이상화에게 직접 이 작품을 선물 받은 포해 김정규 선생의 아들이 선대의 교류를 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상화의 고향인 대구에 기증해 감사를 전한다"며 "이 병풍이 품고 있는 이야기도 소중한 자료라고 생각하며, 이번 기증을 계기로 근대기 예술가들의 교류나 독립운동 관련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세계로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