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역우(以羊易牛)

최문형 교수
news@segyelocal.com | 2019-11-15 15:40:03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허허, 내가 왜 그랬을까? 나도 잘 모르겠어요” 
갸우뚱하는 왕에게 어떤 노학자가 심리분석을 해준다. 

“그건 왕께서 소는 보고 양은 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백성들은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라서 내가 비싼 소를 아까워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할 거에요” 중국의 전국시대에 양나라 혜왕과 대학자 맹자의 대화의 일부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어느 날 오후, 양혜왕은 대청에 앉아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다. 

애절한 그 소리에 평정을 흐트린 왕은 어찌된 소리인지 물었다. 

종을 만드는 의식에 송아지를 희생으로 쓰는데, 끌려가는 송아지와 어미소의 울음소리라는 것이다. 

순간 왕의 마음에 송아지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송아지 그냥 풀어주지 그러냐?”
“그럼 흔종의식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하지 말까요?”
“아, 그건 안되는 일이고,...그럼 제물을 소 말고 양으로 바꾸어라!”

백성들에게 사랑의 정치를 하라고 역설하고 다니던 맹자에게 이 사건은 훌륭한 단서가 되고도 남았다. 

갑자기 카운슬러의 얼굴이 환해졌다. 

“왕이시여,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왕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요. 왕께서는 송아지가 불쌍하셨던 게지요. 어미소와 송아지가 생이별하면서 슬피 우는 모습을 보아 넘기실 수 없었던 겁니다” 
“맞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어찌 제 마음을 그리도 잘 아십니까!” 왕이 무릎을 쳤다. 
“만약에 왕께서 양을 직접 보셨다면 양을 제물로 쓰라고 하지 못하셨을 테지요. 그래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동물이 살아있을 때 보고서 어찌 그 죽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겠습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애틋한 마음은 지도자의 기본이다. 그리고 인간성의 바탕이다.

이 마음을 ‘측은지심’이라고 하는데 바로 인(仁)이다. 

공자는 인(仁)을 가지지 못하면 인(人)이 아니라고까지 했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으면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단언이다. 

요즈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 2일 북한의 목선이 동해상에서 잡혔다. 

그 안에는 20대 초반의 북한주민 둘이 타고 있었는데 닷새만인 7일에 포승줄에 묶이고 안대로 눈을 가린 채 판문점에서 북한으로 인계됐다. 

그들이 배 안에서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범죄자를 인도하는 차원에서 북한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송이 결정된 점, 이들이 잡힌 당일에 바로 대한민국에 귀순 의사를 밝히는 자필서류를 작성한 점 등은 논란거리이다. 

특히 우리 경찰에 의해 판문점으로 인도돼 군사분계선(MDL)에서 북한군에게 인계되기 직전에 안대를 벗겼는데, 먼저 추방된 오씨가 그 자리에서 좌절한 듯 털썩 주저앉았다는 사실은 정황상 통일부의 국회 발언과 어긋난다. 

지난 8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신문 과정에서 여러 상반된 진술이 있었지만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라는 진술도 분명 했다"며 "귀순 의사가 없는 것으로 최종 결론 내렸다"고 하면서, '귀순에 진정성이 없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강제북송 논란이 가열되자 통일부 관계자는 11일 장관 발언에 관해 "북한 어선의 경로가 귀순이 아닌 도주로 파악된 점과 신문 진술 등을 종합 판단한 결과 귀순의 진정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밝혔다. 

젊은 두 사람이 북한에 인도된 후 벌어질 일들은 지난 6월 발간된 고(故)한원채씨의 수기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에 상세하게 쓰여있다. 

함북 길주 펄프공장에서 35년간 기계설계사로 일한 엘리트 한원채씨는 세 번의 탈북을 감행하면서 겪은 감방이야기를 수기로 적어 내려갔다. 

그 원고는 자녀에게 전해져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에 뿌리내렸고, 지난 10월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이 수여하는 북한인권특별상을 받았다. 

저자는 비록 네 번째 북한으로 끌려가면서 돌아올 수 없는 영혼이 됐지만 그가 전한 북한 동포들의 아픔과 신음은 흔종의식을 위해 끌려가는 송아지 울음의 천만배의 소리로 울린다. 

여러 가지 엇갈리는 의견과 해석과 논란은 차치하고 두 사람의 북한 젊은이가 손 묶이고 눈 가리워져 북한으로 되돌려졌다는 사실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이 상황을 먼 옛 사람인 양나라 혜왕이라면 어떻게 처리했을까? 맹자는 무엇이라고 하고 또 공자는 무엇이라고 평(評)을 할까? 공감능력을 지닌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 불쌍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헛헛함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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