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최환금 국장
| 2019-12-19 16:43:15
▲경제발전으로 초고층 빌딩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경제 발전에 따라 초고층 빌딩·아파트 등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초고층 공간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베란다나 창문이 곧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건물 안에서는 살아있는 생(生)이고 창밖으로 떨어지면 사망하는 사(死)가 되는 생사의 경계가 된다. 하지만 이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삶의 활력소가 되고 죽음의 유혹이 된다.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에서도 죽음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인 절망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나 불치의 질병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 역시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절망과 비관적일 수도, 희망과 긍정일 수도 있다.

생의 마지막, 끝나는 시점이 되면 사람은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른바 유언으로 정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생의 희망을 잡기 위해서인지 어떤 사람들은 글을 쓴다. 

글을 쓴다고 해서 남겨진 삶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면 죽음을 느끼게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글을 쓰는 순간은 글에만 집중해야 하며, 이전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아픔을 잊게 되므로 잘 쓰든, 못 쓰든 글을 쓰게 된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쓴 글을 읽으면 자신에게 고백하듯 진솔한 내용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글에서 불가항력으로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도전하는 내용을 보면서 생의 조건으로서의 고통이나 죽음과 구분되는 사람의 의지, 희망을 느낄 수 있다.

미국의 폴 칼라니티라는 의사가 쓴 ‘숨결이 바람될 때(원제 WHEN BREATH BECOMES)’라는 책이 있다.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부제에서 느끼듯이 이 책은 그가 시한부 삶을 정리하는 회고록 같은 2년 동안의 기록이다.

그는 폐암 말기를 선고받고 절망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육체가 무너져 가는 순간에도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가면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본문에 ‘나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아기를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그런데도 그들의 선택은 계속 살아가려고 결심한 이유이기에 긍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선택과 결정이 ‘고통을 피하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그의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말기암 진단을 받고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가는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냈다. 그는 책을 통해 짧았지만 강렬한 삶의 발자취를 남긴 것을 보여줬다.

이는 힘든 일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많은 나태한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과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느끼게 해주는 교훈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쓴 많은 책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진솔한 글을 통해 ‘죽는 대신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고뇌와 결단,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인생의 의미에 대한 성찰 등을 담아 생의 사랑과 가치를 전해준다. 

삶과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지금, 현재가 달라진다. 죽음이 예정돼 있을 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을 때 남은 생을 수동적으로 의미 없이 사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희망으로 삶의 기록(글쓰기)을 남기는 선택이 나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쓴 진솔한 글들이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고맙고 가치 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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