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들려줄 자유 Vs 듣지 않을 자유…“광장 소음주의보?”

광화문 광장, 민주주의 상징 무너지고 ‘정치이념 대립의 장’ 변질
김영식 기자
ys97kim@naver.com | 2019-10-02 16:47:23
▲광화문 광장에 집회로 인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 (사진=뉴시스)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소음(騷音). 시끄러운 소리라는 의미다. 소리를 즐긴다는 음악(音樂)과 사전적 의미가 정면 배치되는 ‘소음’은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부정적 단어 그 자체다. 


일상에서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빚어진 이웃 갈등이나 ‘아닌 밤 홍두깨’ 격인 한밤중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성방가 등 사안은 언제나 있어 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범죄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소음’ 사안을 그리 가볍게만 볼 수는 없는 이유다.


언제나 주위를 지켜온 소리. 이처럼 소음과 음악이란 극단적으로 대표되는 소리에 대한 문제는 최근 민주주의 장으로 대변되는 ‘광장’ 문화 조성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 마이크·확성기 동원한 집회 일상화


특히 단 한 명의 국민도 예외가 될 수 없는 헌법상 시위‧집회의 권리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성숙해나가는 과정에서 점차 강조됐고, 대한민국 광장여론 조성의 대표격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주말을 포함, 매일 매시간 각종 토론거리가 시위‧집회의 형태로 제공된다.


경찰에 따르면 실제 청와대와 광화문광장 등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지역에 등록된 집회 건수는 5년 전인 2014년 약 1,600건에서 올해 2,500건 수준으로 무려 50%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 7월 기준 이 지역에만 신고된 집회는 2,1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시위‧집회의 목적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정보를 알리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결국 들을, 또 들어야 하는 불특정 다수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주최 측은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 시위‧집회 현장에서는 늘 그렇듯 고성이 오가고 심지어 마이크‧확성기를 통한 강제적(?) 정보제공 행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공권력은 소음측정을 통한 단속 등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나 인력부족과 주최 측 부족한 의지 등의 요인으로 실효성 확보는 요원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치이념 대립이 극심한 사회 중 하나다. 시중에선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를 살 때조차 보수-진보로 나눠 토론한다는 말이 나돌아다닐 정도로 ‘일상의 정치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기자는 여기서 말하는 각종 정치적 행위에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일절 없다. 다만 보이고 들리는 ‘현상’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출·퇴근길 오가는 광화문광장 시위‧집회 현장을 오랜 기간 지켜본 결과, 일방이 말하는 이른바 ‘귀족노조’ 집회부터 또 다른 일방이 말하는 ‘태극기 부대’ 시위 등 ‘보수-진보’ 세력 다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을 의미하는 장소에서 헌법상 권리로 탈바꿈해 이뤄지고 있다.


◆ 타인 배려하는 시민의식…“소음→음악 이끌 것”


문제는 극심한 정치적 이념 대립의 환경이 조성된 상황에 주최 측 과열 경쟁이 더해지면서 ‘소리’를 통해 일방적으로 제공된 정보들이 광장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소음’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소음 공격에 일부 시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인근 직장을 다니고 있는 A(33‧여) 씨는 “평소 점심이나 퇴근 시간 광화문광장을 지나가는데 쏟아지는 소음에 신호등 대기시간조차 짜증이 날 지경”이라며 “각자 생각을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까지 허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은 최근 인근 주민들의 ‘생존권 보호’를 외치는 목소리로 모아지는 양상이다.


시위‧집회 일정이 집중된 청와대와 광화문광장 인근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부암동, 평창동 주민들은 최근 누적된 집회 피로감에 ‘소음’ 고통을 호소하는 한편,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침묵’ 시위를 진행했다.


순수한 의도의 ‘소리’를 활용한 정보제공 행위가 그 취지와는 무색하게 타인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소음’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결국 들려줄 자유를 위해 듣지 않을 자유가 침해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 실현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가치의 균형을 추구해왔다. 한 쪽에서 강조하는 시위‧집회의 권리가 다른 편에서 호소하는 ‘생존권‧행복추구권’을 넘어설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시위‧집회 자유의 보장은 보다 많은 사회 구성원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전제될 때만이 그 실효성이 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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