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없는 어리석음

최환금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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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17:02:38
▲최근 자녀 학대 뉴스를 접하면서 기본이 없는 사회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싸가지 없는 사람”


욕이 아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개념 없이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흔히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지적을 한다. 


‘기본이 없다’는 것은 ‘예의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개념이 없는 것은 생각이 없는 것을 일컫는다. 


최근 ‘묻지마 폭력’이나 자녀를 학대하는 뉴스를 보면서 아무 생각(개념)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우려가 더해진다.


거리에서 쳐다본다는 이유로, 그냥 부딪쳤다는 이유만으로 폭력부터 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안하기만 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도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계속 기각되면서 ‘어이가 없다’는 식의 항의성 글이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


물론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법리적으로 적법절차와 방식을 따르지 않아 기각된 것이라 해도 법 해석이 인권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 우선’이라는 구호는 벌써 색이 바랬는가.


작가 정희진은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묻지마 폭력’에 대해 “물어야 할 것은 폭력의 이유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라고 지적했다. ‘묻지마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것은 국가와의 관계에서 또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당신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묻지마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 그리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어린 아이를 물리적으로 학대하는 부모는 자신에 대한 존재의 이유와 이유 모를 분노를 폭력을 통해 막연히 해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갈수록 그렇다. 어른에 대한 예의 운운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두운 골목길에 젊은 사람들이 몇 명이 모여만 있어도 그 길을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불신이 조장되는 사회다.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서가 아니다. 내 곁을 지나는 타인들이 잠재적 바이러스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몰라서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됐다. 쳐다본다고, 어깨만 살짝 부딪쳤다고 아니면 아무 이유 없이 ‘묻지마 폭행’을 하는데도 가해자를 격리시키지 않는 세상에 어찌 사람이 정겹겠는가.


부모의 학대를 피해 목숨 걸고 지붕을 넘어 옆집으로 탈출한 아동의 사례를 보면 쇠사슬로 묶어 놓는 등의 학대가 지속된 것은 할 말을 잊게 한다. 


부모가 아닌 부모, 부모이기를 외면한 부모가 사회 문제 되듯이 사람이 아닌 사람도 늘어나는 슬픈 현실이다.
정치·경제 등 모든 관계의 기본은 사람이다. 그런데 기본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기본이 없는 사람은 싹수가 없는 것이다. 


싹수는 앞으로 잘 될 가능성을 말한다. 싹수의 강원도나 전남 지역 방언이 싸가지다. 그래서 ‘싹수가 없다’는 말은 ‘싸가지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싹수가 없는,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 주가 되는 정치·경제 등을 환언하면 싸가지 없는 정치·경제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상황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싸가지 없는 현실….


싸가지 없는 사람….


사람이 기본에서 벗어나는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데 미래에 대해 무슨 기대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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