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조도·나배도의 관문…확장·정비공사 진행 중

여객선 운항 전 목포까지 고깃배로 3일 소요
서해해경, 심야 응급환자 이송 등 섬 주민 생명보호·안전 제고에 주력
김명진 기자
kim9947@hanmail.net | 2022-05-09 17:20:07
▲상·하조도 전경. 상조도 도리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상·하조도 풍경. 오른쪽으로 보이는 다리가 조도대교이며, 왼쪽 섬 사이의 교량이 나배대교다.(사진=서해해경) 

 

[세계로컬타임즈 김명진 기자] 조도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섬으로 팽목항(진도항)에서 차도선으로 40여분 거리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흔히 상조도와 하조도를 통칭해 조도라 하며 이들 2개의 섬은 조도대교에 의해 연도돼 있다. 하조도 남쪽으로는 관매도가, 서쪽으로는 대마도 등이 자리한다. 


하조도와 상조도의 사이에 위치한 나배도는 지난 3월 중순, 나배대교에 의해 하조도와 연도됐다. 이에 따라 이들 3개 섬은 하나의 생활권을 이룬다. 

지난 1997년 상·하조도가 연도되면서 이들 섬들을 순회하듯 운항됐던 여객선은 사라졌다. 하지만 하조도의 창유항과 상조도의 섬등포항은 여전히 여객 운송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창유항은 조도일대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고, 섬등포항은 유명 관광지인 관매도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유항은 하조도의 북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현재 이 항구와 팽목항 간에는 하루 8차례의 차도선이 운항되고 있다. 비교적 많은 인구가 거주할 뿐만 아니라 다도해 국립공원으로서 찾는 방문객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조도의 돈대산(해발 218m) 정상에 자리한 도리산전망대에 오르면 서남해의 무수히 많은 섬들이 연출하는 그림 같은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섬등포 선착장의 경우 하조도와 마주보는 상조도의 남동 해안에 위치하며, 현재 이 선착장에서는 진도항-창유-어류포-관매도 등을 기항하는 차도선이 운항되고 있다. 

이들 항구에서 현재와 같은 차도선이 운항되기 전인 1970년대에는 조도와 진도-목포 간에는 하루 1차례 여객선이 운항됐다고 한다.

“아침 7시에 조도를 출발하면 진도 팽목과 쉬미항, 신안군 장산도 등을 거쳐 오후 2시쯤 목포항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목포선착장은 현재보다 육지 쪽으로 더 들어간 시내 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조도 토박이인 문성식씨(73·하조도 어류포)는 목포에 한번 나가려면 7시간이 걸렸으며, 이 같은 여객선이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65년 무렵부터라고 말했다. 여객선이 다니지 않았던 이전의 시대에는 노 젓는 풍선을 이용해 육지에 나갔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고기잡이배들이 목포로 나갔습니다. 그 때 이 배를 얻어 타고 뭍에 갔는데 작은 고깃배에는 4~5명이 타고, 좀 큰 배에는 10명 정도가 탔습니다” 

문씨는 ‘당시에는 뱃삯이란 것이 없었고, 평소에 고깃배 주인집의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삯을 대신했다’며 ‘이배는 풍선이었기에 목포까지는 3일이 소요됐고 가는 동안 좁은 배 안에서 먹을 것과 숙식을 스스로 해결해야했다’고 회고했다. 

“음식을 짜게 간하고, 여기에 조기 등의 마른 생선, 풋고추, 된장 등을 가져갔습니다. 화장실이 별도로 없었기에 판자로 가리고 일을 봤으며 밤이슬을 피해 ‘장안(선실)’에서 여러 사람이 겨우 쪼그리고 자며 힘들게 뭍에 나갔었습니다” 

이 고기잡이배들은 목포에 나가 물고기를 팔거나 곡식, 생필품 등과 물물교환을 해서 돌아왔다고 한다. 

최근에 연도된 나배도의 경우 최근까지 하루 2회 차도선이 운항됐지만 다리가 개통되면서 운항이 중단됐다. 

이 마을 한희자씨(61·나배마을)는 ‘다리가 놓이기 전에 신광페리, 한림페리가 다녔으며, 이 배들은 목포에서 동서거차도까지 하루 1회 왕복 운항됐다’고 말했다. 

나배도에 거주하는 박윤심 할머니(80·나배도 나배마을)는 ‘나배도는 미역으로 유명하다’며 ‘겨울이 시작되기 전 10월에 지주에 미역포자를 이식해 다음해 4월에 수확 한다’고 말했다. 

이곳 미역은 생산자와 품질에 따라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지만 대개 20가락에 10~15만 원 선이라고 한다. 

조도의 경우도 신안군의 많은 섬들과 엇비슷한 상·장례 풍속이 얼마 전까지 존속됐다고 한다. 

“상가 집에서 꽹과리와 북을 쳤습니다. 상주나 상여 매는 사람들에게 새벽에는 닭이 들어간 떡국을 대접했고 밤에는 흰죽(쌀죽)을 끓여서 먹였어요.” 

19살에 나배도로 시집왔다는 김금엽 할머니(95·나배마을)는 이 같은 풍속과 함께 ‘장례를 마친 상가 집의 ‘삼오’에 이웃들이 막걸리를 가져다주기도 했다‘며 ’당시 부조는 막걸리나 소주 한 되, 쌀 한 되 정도였고 돈으로 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명절 음식과 관련, 김할머니는 ‘추석에 ‘세르펜(송편)’은 부자들만 해먹는 떡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떡을 못했다‘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하루 일해 한 끼를 먹었고 일 하러 가서 주는 밥을 절반만 먹고 절반을 가져와 가족들을 먹이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품삯은 보리밭일을 하면 수확철에 보리를 조금 주고, 고구마 밭일을 하면 고구마를 조금 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한편, 서해해경은 지난달 25일 밤 8시께 맹장염 의심 환자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해 이 환자를 육지로 이송했으며, 앞서 18일과 13일에도 호흡곤란 환자와 뇌경색 의심 환자를 긴급 구조하는 등 거의 2~3일에 한 차례씩 경비정 등을 출동시켜 섬 주민의 생명보호와 안전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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