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아이에서 의원으로’…김원이 당선인 ‘입지전적 과정’

성실·정무감각 탁월…7급 수행비서에서 목포 국회의원 올라
유영재 기자
jae-63@hanmail.net | 2020-04-20 13:05:48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발표 후 선거사무실에서 당선 축하 꽃다발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원이 당선인 캠프)

 

[세계로컬타임즈 유영재 기자] 4·15 총선에서 ‘호남 정치1번지’ 목포 지역의 박지원·윤소하 후보 등 거물급들을 누르고 당당히 국회에 입성한 김원이 당선인은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된다. 김 당선인은 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난말리)에서 3남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고향은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외딴 섬이다. 어릴 때 목포로 이주해 목포에서 초·중·고를 다녔으며, 서울 성균관대 사학과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7급 수행비서로 공직을 시작해 차관급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거쳐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외딴섬 출신으로 고단했던 성장 과정과 치열했던 총선 과정을 거쳐 국회의원으로서 포부를 펼치게 된 김원이 당선인의 정치철학 등 그의 포부와 비전을 들어본다. / 편집자 주

 

김원이 당선인은 “민주화 요구가 거세던 1987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학생운동과 지역운동에 앞장서 20대를 보냈다”면서 “재학 중 총학생회 정책국장,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북부지구 정책위원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에 나서 제적을 당했으며, 졸업 후 노동운동에 몸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1993년 결혼과 군 입대를 위해 정착한 목포에서도 대밭골 노동청년회 야학 강사, 지역 언론사 설립 추진, 공장 노동자, 시장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며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첫째 아들을 위해 1996년에 서울로 상경한 후 이른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23년 동안 당과 정부·청와대·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쌓았는데, ‘목포에 꼭 필요한 인재가 돼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정치인에 대한 야심과 계획을 세운 것도 이 시기였다“고 말했다. 


김 당선인은 성실함을 기반으로 정무 감각이 뛰어나 위기관리에 능하고, 소통 능력이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어떤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를 인정받은 것인지 만 34세에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으며, 이후 신계륜·박병석·천정배·기동민 국회의원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 보좌관을 지냈다“고 말했다.  

 

▲ 김 당선인이 선거사무실에서 부인과 함께 두 손을 높이 들고 당선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원이 당선인 캠프)

이어 “2011년에는 박원순 호에 합류해 정무보좌관과 정무수석비서관을 거쳤으며, 문재인 당 대표 시절 조직부본부장, 2017년 문재인 선대본 직능부본부장을 맡아 대선에서 조직적인 역할을 했다”며 “대선 후 2018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 2019년에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고 밝혔다.

 

사실 김 당선인의 당선은 새삼스런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시 정무부시장 퇴임 후 목포에 본격 상주함으로써 오래전부터 결심한 국회의원 출마에 대한 대비를 했으며, 상주 5개월 만에 민주당 경선과 본선을 치러 당당히 후보로 자리매김했다”며 “이는 2~3년 전부터는 꾸준히 목포를 방문하면서 기반을 다져왔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당선인은 “출마 후 ‘임무 교대’와 ‘새로운 목포’를 내세워 적임자로서의 입지를 강조해 나갔다”면서 “이러한 선거운동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목포가 정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을 이루려면 목포·호남 대표 새 정치인이 필요한 기대에 부응하며 지지를 넓혀 갔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4·15 총선에서 목포를 새롭게 발전시킬 젊고 새로운 인물로의 임무 교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사실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나갈 새로운 정치인으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있닥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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