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 겨울 산

황종택

resembletree@naver.com | 2021-11-11 08:11:08

시인 이용헌

   겨울 산


                                 이용헌


바람이 밤새 벼린 칼을 눕혀
희디흰 눈의 속살을 스칠 때
저만치서 베인 몸을 감추고 누워 있는 물고기를 보았다
가량없이 물안개를 토해내던 아가미와
미명을 털어내던 꼬리는 어디에 두었는지
흔적 한 줄 남기지 않고 저민 살을 수습하는
순백의 등줄기를 보았다
북녘 바다에 산다는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저러했을까
이 생각 끝에서 저 생각 끝까지
적막의 지평에 누워 한뎃잠을 자다가도
한번 튀어 오르면 천 리를 날 것 같은 새벽 등성이
곤이라는 물고기가 붕(鵬)이 되어 나는 것도
붕을 여읜 구름이 구만리장천을 소요하는 것도
한때는 저 바람의 칼을 견뎌왔을 터이니
숨죽이고 누워있는 상처의 바깥쪽은
필시 눈부신 새의 깃털을 닮았다
언제부턴가,
겨울 산 같은 당신 하나 마음 저편에 뉘어놓고
바람에 훔친 칼날로 밤새 긋고 지나갈 때에도
창밖엔 사시장철 눈이 내리고
미처 말이 되지 못한 문장들 눈 속에 가득하였으니
대체, 산과 산 사이 당신과 당신 사이
바람이 베고 간 상처는 몇 리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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