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 상사화

황종택

resembletree@naver.com | 2021-09-30 08:42:33

시인 행전 박영환

▲행전 박영환 시인
           상사화
                                  시인 행전 박영환
달빛 속에 소리 있어문을 밀치고 내다보니 온 몸으로 쓴 분홍빛 연서 한 묶음느리게 보내는 편지인지라그토록 그리워하는 이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지만해마다 어김없이 보내는 깨물린 사연애써 여린 다리 씩씩한 듯 뼈를 세워눈썹까지 받들어 버겁게 숨을 내쉬는데어쩌면 전설의 환영幻影을 보는 것 같아 아찔하다금줄 그어놓은 인연의 처음과 끝은 어디인가잎이 피면 꽃이 숨어버리고꽃이 피면 잎은 이미 멀리 떠난 뒤다피안과 차안 같은이 언덕과 저 언덕을 본다이 언덕 아래 저 언덕이 있고저 언덕 위에 이 언덕이 있어도서로는 거리를 몰라 울고 있을 뿐이다악연일까, 운명일까쫓고 좇는 숨바꼭질 형벌이 끝나면그들의 줄다리기도 허무하게 마감하고 만다내가 네가 될 수 없기에나는 나로 살고 너는 너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차라리 펑펑 크게 한 번 울어버리게나혼자 지독한 열병에 베이어우는 것 웃는 것 깨닫지 못하고 저물어가는 모습같이 아파하기 힘들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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