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단상] 한여름 밤의 꿈

편집부

| 2017-09-04 09:17:07

정영수 언론인

주여, 때가 왔습니다(Herr, es ist Zeit).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Der Sommer was sehr groß).

체코의 프라하가 고향인 독일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가을날(Herbsttag)’은 이렇게 시작된다. 남자가 ‘마리아’라니, 미들네임이 남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세례명을 중간이름(Middle Name)으로 쓴다. 릴케의 어머니는 그의 세례명을 ‘마리아’라고 붙여줬다. 여성스러우라고 지어준 것인데, 아버지는 그가 남자답게 자라기를 바랐다. 그래서 사관학교에 보냈으나 곧 자퇴했다. 어차피 그는 ‘장미의 시인’이 아니었던가.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시고
마지막 열매들이 살찌도록 분부해 주소서

무더위가 가고 가을이 오면 와인을 빚어낼 포도가 풍년이 들도록 기도하는 유럽풍의 소박한 꿈이 묻어난다. 그들만의 지리적 염원일 것이다. 릴케는 나이 50에 문병 온 팬이 선물한 장미의 가시에 찔려 파상풍 때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장미의 시인'이다. 그러나 진짜 사인은 백혈병. 본인은 끝까지 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을병에 걸린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가 직접 쓴 묘비명을 봐도 알 수 있다.

장미여, 오 순수한 기쁨이여
<중략>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2017년 우리들의 여름도 위대했다. 더워도 너무 더웠고, 오래오래 지겹게 땀을 쏟아야했다. 매스컴에서도 호들갑이다. 처음에는 ‘무더위’ 정도로 젊잖게 나간다. 그러다가 폭염, 찜통으로 수사가 험악해진다. 급기야 상승작용을 일으켜 ‘가마솥’을 거쳐 ‘전국이 용광로’까지 가면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러다보면 곧 입추다. 계절은 그렇게 해서 가고 오는 것일까. 영원한 더위는 없다. 그러나 쉽게 수그러들지도 않는다. 총을 든 백인에 쫓겨, 불을 만들 줄은 알아도 보관을 못한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늦더위를 그들은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라 부른다. 올해엔 9월까지도 더위가 계속된다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딴 딴~따단~. 바그너의 그것과 쌍벽을 이루는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은 그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에 나온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17살에 쓴 희곡을 무대에 올린다. 그 희곡을 읽고 멘델스존은 시쳇말로 뿅~ 갔다는 것이다. 누구든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사랑의 꽃을 눈꺼풀에 붙이면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에 정신없이 반해버리게 된다는 것. 젊은이들이 잠든 사이에 꽃물을 발라 드미트리어스와 헬레나를 맺어 주는 동화 같은 줄거리이다. 장난으로 드미트리어스의 눈에 꽃물을 발랐는데, 아무도 사랑하지 않던 헬레나를 두 남자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동시에 사랑하게 된 것이다.

지난여름 너무나 암울했던 당신의 하늘이
드넓은 가을 하는 속에 떠다니는
뭉게구름처럼 하얘지기를

무덥고 긴 여름, 나만의 ‘한 여름 밤의 꿈’을 뒤로하고 가을걷이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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