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야
온라인뉴스팀
news@segyelocal.com | 2016-08-01 10:13:02
민주주의의 꽃은 지방자치라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의 약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도 지방자치라고 한다. 지방자치란 따라서 한 나라의 중앙과 지방의 구심력과 원심력, 다시 말하면 소통과 교류,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루어 상호보완을 이루었을 때 가장 생산적인 지방자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의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는 1995년을 기점으로 지방자치의 최대성과는 각 지방의 문화와 산업이 나름대로 개성과 균형을 이루면서 자신감을 얻고 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의 역사문화인물들이 현창되면서 애향심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관광사업과도 이에 연계됨을 볼 수 있다. 또한 농축산물의 지역특성화와 함께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산업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요즘 지방에 가보면 주어진 천연자원과 문화전통을 최대로 활용·개발하여 지역의 개성과 특화를 도모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주민의 자부심도 종래보다 한결 높아진 것을 볼 수 있다. 과거 중앙집권시대와는 달리 지역별 다원화와 함께 지역축제를 통해 삶의 역동성을 높인 것은 큰 성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것은 자칫 지방자치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위험도 없지 않다. 취약한 재정자립도는 특히 지자체의 예산배정의 우선순위를 잘 매길 것을 요구하고 있고, 특히 방만한 경영을 경계대상 1호로 지목하게 한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가 신청사를 지으면서 서울의 중앙청사보다 더 화려하고 거대하게 짓는다거나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적자나는 국제행사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 등 예산낭비와 과도한 실적주의는 분수를 넘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자체가 관공서 건물이나 건축토목공사 등 하드웨어의 건설에만 열중하고 정작 자방민의 문화생활 향상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소프트웨어의 운영에 무관심한 것은 종래 중앙정부가 범해온 관료주의의 폐단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자체의 부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의 실질적인 문을 연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1993∼1998년)가 민주주의의 큰 진전을 이루었지만, 반대로 정권말기에 IMF(경제신탁통치)라는 국가부도사태를 맞은 것과 유사한 행보를 보이는 것을 아닐까, 염려된다. 한국 민주주의의 큰 약점이 지방에도 고스란히 전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의 부채가 파산을 염려케 하는 대목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기업의 워크아웃제와 유사한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가 거론되는 것은 그만큼 지방자치의 위기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잘못된 정치행태의 복사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경우, 특히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인물들이 행정과 의회를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방자치는 무엇보다도 민생에 밀착하여야 한다. 단체장과 의원들이 자신의 지위를 중앙정치로 진출하는 발판쯤으로 생각하고, 지방의 살림살이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한국 지방자치의 가장 큰 맹점은 국토는 좁고 인구와 경제규모는 작은 데 선진강대국의 주(州)정부나 성(省)정부를 흉내 내어 중앙정부와 상의나 교감 없이 독단적으로 과도한 외자유치를 한다거나 사회보장제도를 실천한다거나하여 대중영합주의로 지방행정을 끌고 가는 행위이다.
이에 더하여 지방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중앙의 정당이나 국회의 하부구조로 전락하여 당파적 행동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지방자치의 이상형은 기초자치단체가 할 수 없는 일을 보충적으로 광역자치단체가 하고, 광역자치단체가 할 수 없는 일은 중앙정부가 하는 이른바 ‘보충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자치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과 반대로 역 피라미드식을 보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성과급 지급현황을 보면 부채가 많은 지자체일수록 성과급을 많이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IMF를 맞은 은행들이 퇴직금 잔치를 벌인 것에 비할 수 있다. 자치단체의 예산지출을 절약하거나 국고수입을 증대시킨 경우, 성과의 일부를 기여자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성과급의 목적으로 볼 때, 지방재정을 방만하게 집행한 대표사례인 것이다.
지방자치란 국가마다 생성·발전되어 온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르지만 전통적으로 ‘주민자치’와 ‘단체자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주민자치’는 자치단체와 주민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는 자치제도로서, 일상생활에 관련되는 분야를 국가(중앙정부)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의 책임 하에 처리하는 제도이다.
‘단체자치’는 자치단체와 국가의 관계에 중점을 두는 자치제도로서, 국가로부터 독립된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아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단체자치라고 하여도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사사건건 대립하라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는 국가의 안위와 관련되는 문제나 국가차원에서 판단하여 집행하는 안건의 경우 해당 지자체의 이익과 위배된다고 하더라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드배치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차제가 정면 대결하는 양상은 지방자치의 본래목적을 벗어나고 있는 예이다.
말하자면 지방자치가 국가의 분열사태를 몰고 와서는 안 된다. 지자체의 지나친 대중영합주의는 도리어 민주주의의 화(禍)가 될 수도 있다. 중앙정부의 당파성을 지자체가 대신해서 행사하거나 그것을 사주 받아서 연장하는 태도는 금물이다.
2016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0%(52.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재정의 반은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야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로는 진정한 지방자치시대라고 말하기에 부족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전 재정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난 7월 4일 행자부는 화성시를 비롯해 수원, 성남, 과천, 고양, 용인시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방재정 개편안’ 입법예고를 단행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의 상관적 현실이다. 재정의 자립이 없이는 지방자치는 빛 좋은 개살구이다. 전국 95%에 이르는 지자체가 재정자립도가 50%를 밑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지자체들은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험의 단계를 거쳤다. 이제 제대로 균형감과 창조성을 갖춘 지방행정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국가도 세계 여러 나라와의 경쟁에서 자신의 장점과 특수성을 잘 살려서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처럼 지자체들도 다른 지차제와의 비교우위를 통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문화운영의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1988년에 지방자치법 전문(全文)을 개정함으로써 30년간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부활했지만 그동안 복잡한 정치적 사정으로 1991년에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1995년에 자치단체장를 민선하게 된 한국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역사가 일천하고, 지금도 진화중이다.
지방의 균형발전과 자치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정치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시작된 우리의 지방자치는 그동안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여전히 민선시장들의 부패와 인사전횡, 측근들의 인허가개입 등 각종 부조리와 부정부패라는 어두운 면을 안고 있다.
특히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국회독재의 위험에 직면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회의 권력남용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방의회의 조례안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이 대법원에 직접 제소할 수 있는 ‘위법조례에 대한 정부제소권’을 제기한 것은 지방조례가 정부의 상위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자치가 근대에 등장한 제도로서 근대적·민족적 통일국가의 성립을 전제로 한다는 점, 지방자치는 연방국가를 구성하는 지분국가(支分國家)인 주(州)의 권력과 구별된다는 점, 그리고 지방자치는 국가의 행정적 분권이 아니라 자치적 분권의 성질을 가진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생산적인 지방자치의 시대를 열려면 무엇보다도 자치제는 항상 스스로의 규모에 맞는 ‘규모의 행정(정치)’ ‘규모의 살림살이(경제)’를 중시하여야한다. 지자체의 역할은 중앙정부가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하거나 등한시 하였던 행정의 누수영역을 바로잡아 나름대로 보완하는 일이다.
분수에 맞는 지방자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과 생활전반에서 밀착하여야 한다. 중앙정치의 흉내를 내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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