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조사위원 연해주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이우춘
wclee@segye.com | 2017-10-16 10:22:08
고려인 학살당한 역사의 현장 신한촌 기념비 헌화
이상설 선생 유허비 참배… 발해 옛 성터 등 방문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고택은 기념관으로 단장중
‘김일성·김정일’ 배지 단 북한 노동자도 종종 목격
[세계로컬신문 이우춘 세계일보 조사팀장] 세계일보 조사국에서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극동러시아에 위치한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및 우수리스크 지역의 독립운동 유적지을 탐방했다. 조국통일의 정론지 세계일보가 남북통일과 민족정기 발양을 위해 개설한 제5기 통일지도자 아카데미의 원우 및 조사위원 64명이 함께했다.
양양국제공항에서 2시간 반 비행해 도착한 하바롭스크는 인구 60만의 연안도시이다.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하바롭스크의 9월은 조석으로 선선하지만 대체로 여름 날씨다.
이튿날 탐방단은 러시아 정교회 사원들 중 세 번째 규모의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에서 진행된 일요미사에 참여한 후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으로 참전해 전사한 고려인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향토박물관에서는 극동 지방의 생태계와 원주민 및 러시아인의 이주 역사를 한 자리에서 관람했다. 박물관 앞의 훼손된 돌거북 비석이 일행의 이목을 끌었다. 발해 유적으로 추정되는 비석은 우수리스크에서 암수 한 쌍이 발견되어 하나는 이곳에 나머지 하나는 우수리스크에 자리하고 있다. 제짝과 강제로 이별한 상처 난 돌거북이 분단된 한민족을 대변하는 듯하다.
오후 일정은 니콜라이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1809~1881) 총독을 기리는 축제를 둘러봤다. 총독은 태평천국의 난으로 혼돈에 빠진 청나라로부터 아무르강 이북의 광활한 영토를 무상으로 얻어낸 인물이다. 축제는 유라시아의 극동에 유럽 문화와 예술이 꽃피울 토대를 마련한 총독을 추억하며 기쁨을 만끽하는 러시아인들의 모습이다.
◆“한·러 우호증진과 남북통일 위한 인재양성 필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하룻밤을 묵고 ‘러시아의 나폴리’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먼저 루스키섬으로 향했다. 3차 동방경제포럼이 열린 극동연방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섬 전체가 과학·교육·기술 클러스터이자 휴양지이다.
푸틴 정부가 2012년 신동방정책을 표방하며 야심차게 투자를 단행한 결과다. 하지만 크림반도 강제합병과 유가급락으로 이제 극동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러시아는 해외투자를 유치하고자 한다.
최북단이 프랑스 파리(북위49도) 보다 저위도에 위치해 극동지역 가운데 기후환경이 사람이 살기에 무난한 연해주 정부가 경제특구 지정과 법령을 고쳐 투자유치에 필사적이다.
캠퍼스를 둘러 본 한 조사위원은 “한국의 젊은이들과 고려인 후손들이 극동연방대학에서 전문지식을 쌓고 한·러 우호 증진과 남북통일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학사업을 추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는 개척리의 구한촌(현 해양공원) 찾았다. 고려인들은 1860년대 두만강을 건너 지신허 마을을 세웠고, 개척리에 대규모로 정착했다.
하지만 1911년 제정러시아는 콜레라 창궐 등 갖가지 구실을 만들어 한인들을 구한촌에서 아무르만 산기슭 신한촌 기념비가 세워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첫 번째 강제 이주다.
탐방단은 이어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1858~1920)이 우수리스크로 이주하기 이전인 1919년까지 거주했던 곳을 찾았다.
이어 젊음의 아르바트 거리, 블라디보스토크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중앙광장, 개선문도 둘러봤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뱃지를 단 북한 노동자도 볼 수 있었다. 연해주 건설현장에는 외화를 벌기위해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이 꽤 있다고 한다.
넷째날은 신한촌에서 시작했다. 신한촌은 재외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1919년 2월 들어선 곳으로 3‧1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17일 대규모 독립만세 운동을 벌인 곳이다.
이듬해 4월 일본군이 300여 명의 고려인 학살을 자행한 신한촌 참변 그리고 1921년 6월 러시아혁명군(적군)과 고려공산당(이르쿠츠크파)이 한인사회당(상하이파)을 공격한 자유시 참변으로 연해주 독립군은 약화됐다.
러시아혁명에 일조한 독립군은 1922년 일본군이 연해주에서 물러나자 적군으로부터 무장해제 되어 토사구팽 당했다. 탐방단은 굴곡진 역사의 현장에 세워진 신한촌 기념비에 헌화하고 독립투사들의 얼을 기렸다.
◆강제이주 80년, 재러동포에 정부차원 관심 절실
우수리스크로 향했다. 우수리스크로 가는 길에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80년 전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으로 이주를 당해야 했던 고려인의 한(恨)이 서려있는 라즈돌노예 역에 들렀다.
20여만 명의 고려인이 6천km 떨어진 중앙아시아 10개 지역으로 수송됐다. 강제이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인들을 연해주에서 완전히 추방하려는 것이다.
1937년 9~10월을 피크로 연해주 전 지역의 한인들이 시베리아 철도 화물차에 실려 강제 이주됐다. 중앙아시아까지 40여일 시베리아 삭풍이 휘몰아치는 화물칸에서 얼어 죽고, 굶어죽고, 홍역과 학질 등의 병으로 앓아죽는 등 극한의 강제 이주 과정에서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주거 이전의 자유 등 기본적인 시민권이 박탈된 열악한 상황에서도 불모지를 개척하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존경받는 민족이 됐다. 이제 재러동포로 뿌리를 내리고 한‧러 교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 한·러 교류의 한축, 한·러 공동 발해유적 발굴 조사
드디어 한인과 독립운동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먼저 우수리스크 인근 솔빈강(率賓江)변에 자리한 헤이그 밀사이자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에서 참배를 마치고 발해국 솔빈부가 위치해 있던 성터를 찾았다.
문화재청과 러시아과학원은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30일까지 실시한 한·러 공동 발굴조사에서 연해주 남서부 솔빈강가에 자리한 스타로레첸스코예의 유적은 판축(版築) 방식으로 축조된 발해성이라고 밝혔다.
우리 고대역사로서 9세기 동북아시아에 위상을 떨쳤던 해동성국(海東盛國)의 실체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한·러 공동 유적발굴이 한민족 고대문화 복원과 한·러 교류의 한축이 될 길 기대한다.
이어 연해주의 대표적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1919년부터 1920년 4월 일본헌병대에 의해 총살되기까지 거주했던 고택에 들렀다. 고택은 독립운동 기념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단장 중이었다.
하바롭스크에 본 돌거북의 나머지 반쪽을 본 후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있는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했다. 강제이주된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돌아온 수만 명의 고려인들이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섯째 날 독립운동가들의 만남의 장소로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 금각교(金角灣)와 금각만이 내려다 보이는 독수리전망대에 올라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탐방일정을 마무리했다.
북핵 리스크로 한반도 주변 동북아 정세가 최고조로 악화되어 가는 시기에 독립투사들의 발자취에 놓여진 선조들의 유물·유적지와 탐방 열흘 전에 끝난 3차 동방경제포럼 개최지를 둘러보며 과거로부터 한민족 웅비의 미래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는 여행이었다.
◆韓 신북방정책, 러 극동개발과 접목 외교안보 활로 열어야
세계일보는 탐방단이 귀국하던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극동러시아 개발과 동북아 평화구상’을 주제로 “2017 세계평화포럼”을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동북아 평화구상’ 실현을 위해 문재인정부의 신(新)북방정책과 러시아의 극동 개발 정책을 적극적으로 접목해 한국의 외교안보 활로(活路)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우춘 세계일보 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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