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단상]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 배우기

김수진

neunga@naver.com | 2018-02-27 13:28:23

정영수 언론인


서울 역사박물관을 지나 강북삼성병원이 있는 종로구 새문안로는 최근 들어 ‘옛것 살리고 새것 더하는’ 돈의문 박물관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바로 옆에 경희궁 터(구 서울고등학교 자리)가 있지만 이곳에는 예전에 골목 좁은 마을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박ㅇㅇㅇ접골원’ 등 부러진 뼈를 이어 맞추는 접골원들이 줄이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접골원에서는 뼈만 맞춰주는 게 아니었다. 손발이 없는 사람에게 인공으로 손이나 발을 만들어 붙이는 의수(義手), 의족까지 쇼윈도에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전시해 놓기도 했다. 어찌나 살아있는 사람의 손과 발처럼 똑같이 생겼던지 처음엔 놀랐지만 호기심이 생겨 일부러 찾아가보곤 했다. 주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젠 모두 이주하고 건물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옛 모습을 살리는 마을박물관으로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돈의문(敦義門)은 한양도성 4대문 가운데 서쪽 큰문이다. 보통은 그냥 서대문이라고 부른다. '새문' 또는 '신문(新門)'이라고도 하여 가까운 새문안교회도 그 이름에서 유래한 것. 그 교회 또한 지은 지 130년이 넘어 재건축 중이다. 돈의문은 1915년 전차궤도의 복선화로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 바로 옆에 있는 강북삼성병원 앞에서 경희궁 입구까지 경찰박물관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하거나 리모델링 중이다.

지난해 철거에 들어가면서 임시로 설치했던 가림막에는 온통 낙서와 광고 전단지가 다닥다닥 나붙어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림막을 깨끗이 정리하고 '1920 서울의 거리를 거닐다'를 주제로 하여 1920년대 신문과 잡지에 실린 만평을 중심으로 ‘모던보이, 모던 걸’ 등 흥미로운 그림이 걸리자 사정이 달라졌다. 낙서는커녕 광고 전단하나도 붙이는 이가 없었다. 그 재미있는 그림들을 보느라 오가는 차량의 정체가 심하다고 한다. ‘깨진 유리창 효과’다.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 theory)‘이란 주인이 깨진 유리창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방치하면 자기 물건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주게 되어 각종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아무나 돌멩이를 던져 멀쩡한 유리창마저 깨부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미국 뉴욕에 있었다. 뉴욕 시장이 된 줄리아니(Juliani)가 뉴욕시의 범죄를 없애기 위해 시행한 대책은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고 신호위반이나 쓰레기 버리는 행위 등 가벼운 범죄를 강력하게 단속하는 것이었다. 이 정책 시행 이후 강력 범죄의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 이론과 ‘썩은 사과상자 이론’의 본질이다.

멀쩡한 자동차를 번호판 떼고 유리창을 깨어 방치했더니 평범한 사람도 돌로 차를 부수고 내부를 다 뜯어간 사실이 실험을 통해 나타났다. 그래서 뉴욕 시장이 뉴욕의 거리를 밝게 하고 청소와 정리 정돈을 깨끗이 하였더니 범죄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 범죄를 저지를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 결과다.

싱싱한 사과를 썩은 사과상자에 담아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가 썩기 시작한다. 사람도 비정상적인 조직 안에 두면 그 사람의 소양도 그 조직에 물들어 썩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썩은 사과상자’ 이론이다. 이런 것이 모두 환경과 상황의 힘이다.

미국의 홍보 마케팅 전문가인 마이클 레빈(Levine) 교수는 '깨진 유리창 법칙'을 비즈니스 사례에서 찾았다. 이를테면 어느 식당에서 벗겨진 페인트칠을 방치하면 고객은 가게의 청소 상태나 서비스 정신, 위생 관리 등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가게의 모든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점이라도 미리 다잡아놓아야만 향후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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