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 이종갑 마나스아트센터 대표
김수진
neunga@naver.com | 2017-09-25 13:31:59
출장 잦아 선물하려다 빠져들어 3000점 넘게 소장
현지 매니저 두고 매입…재료구해 작가에게 의뢰도
소유하던 작품 대그룹 회장·백악관 등 전달돼 뿌듯
아프리카 미술까지 시선 넓혀야…도움 필요땐 협조
작가들 5살 때 입문해 글도 모르지만 상상력은 풍부
밑그림도 없이 동시 다발적으로 조각하는 기술 신기
[세계로컬신문 김수진 기자]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마나스아트센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천장을 뚫고 나갈 것 같이 높고 검은 조각상이 시선을 끌었다. 흑단나무 하나에 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이 조각된 수십명의 사람들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난다.
이종갑 마나스아트센터 대표가 “마음을 한 번에 확 끄는 힘이 있죠? 이게 아프리카 조각의 매력이에요”라며 취재진에게 웃으며 설명했다.
개인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아프리카 조각을 수집하고 대중에 선보이고 있는 콜렉터가 있다는 소식에 지난 8일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마나스아트센터를 방문했다. 쑥스러운 듯 말 없이 전시장을 함께 돌다가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보다 활기찬 목소리로 아프리카 미술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 아프리카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사실 예전엔 사업을 했었다. 그런데 1994년 사업차 아프리카에 출장이 잦았는데 아프리카 조각에 관심있는 친구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쇼나조각과 마콘데조각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1년에 10번 정도 아프리카를 오가면서 조각작품을 수집하다보니 어느 날 보니 여기에 내가 미쳐있었다(웃음). 아프리카 조각 등 이곳 미술이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끌이나 정으로 나무, 돌 따위를 본인의 자유로운 생각을 바탕으로 부족의 생활상이나 상상 속 무언가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걸 보고 있자면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 현재 소장 중인 작품 수는?
세어보진 않았지만 최소 3000점은 넘을 것 같다. 마나스아트센터 안팎으로 전시해놓은 작품뿐만 아니라 창고에 보관해놓은 작품 수만 해도 엄청나다. 돈으로 따져도 수십 억원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사업해서 번 돈을 모두 쏟아부은 결과다. 쇼나조각이나 마콘데조각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기존 시장에서 구하는 작품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더라.
그래서 좋은 소재를 구해서 유명 작가에게 주문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콘데조각의 재료인 흑단 나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마음고생 꽤나 한다.
재질이 단단하고 목재로서는 보기 힘든 검은색의 흑단은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해 가공 시 돌을 깎는 수준에 가깝다. 하지만 묵직하고 우아한 색감으로 지나치게 남벌해 현재 유네스코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구하기 힘들다보니 아프리카 사냥꾼들에게 현상금을 걸어서 구해 작업을 의뢰했다. 힘들게 만들어내지만 작품이 하나 나올 때마다 느끼는 보람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잊게 할 정도다.
- 쇼나·마콘데조각의 특징은?
먼저 쇼나(Shona)라는 이름은 짐바브웨의 부족에서 유래됐다.
쇼나부족에서 만들어내는 조각이라는 의미인데 이 부족이 돌조각에 대해 천부적이고 창조적인 재능을 갖췄다.
조각 활동은 기원전 8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돌 위에 밑그림 없이 작가의 상상력과 경험으로 조각하는데 DNA에 조각하는 유전자가 녹아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쇼나조각이 서구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50년 짐바브웨(당시 로디지아) 정부가 짐바브웨 국립미술관 미술관을 설립하고 프랑스 비평가를 초대관장을 위촉하면서부터다.
1969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쇼나조각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이들 작품들은 당시 미국 및 유럽 예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기면서 쇼나조각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이후 유럽 등지에서 관련 전시회가 연속 개최되면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으며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마콘데(Makonde)조각은 동부 아프리카 해변의 마콘데 부족이 만드는 목조각이라 보면 된다. 현재 탄자지나에서 거주하는 마콘데 부족사람들이 가족, 마스크 등을 흑단 나무를 칼로 정교하게 조각해서 만든다.
주된 소재는 가족이며 그 중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모계사회를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커다란 나무에 부족의 생활상과 가족의 모습을 얽히게 표현한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 그렇다면 쇼나조각이나 마콘데조각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나?
감상법이 따로 있지 않다. 그냥 보고 생각나는 대로 느끼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쇼나나 마콘데 작가 대다수가 글도 잘 모른다. 그저 본인이 느낀 대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보통 5살부터 정이나 끌 등을 잡고 조각을 배우기 시작하는데 10살이 되면 어느 정도 기술을 숙달한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아버지나 형, 주변 조각가에게 조각하는 법을 익힌다.
이 과정을 통해 자유로운 사고와 소속된 부족의 사상을 작품에 녹아내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마콘데 작품 다수가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을 구현하고 있는데 작가가 토템신앙을 바탕으로 귀신이나 악마, 상상 속 무언가를 모습을 조각하는 것이다.
누구도 상상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고 생각도 자유롭다보니 작가 100명이면 작품의 유형도 100가지에 이른다.
또 신기한 건 밑그림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조각하는데 이러한 엄청난 기술을 서양인들이 배우려고 아프리카로 유학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익히지 못한다.
막힘없는 상상력과 구상력, 표현력은 쇼나와 마콘데 작가들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 작품 구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당연히 쉽지 않다. 요즘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작품을 서로 사가려는 경쟁도 치열하고 유명 작가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다.
2002년인가 탄자니아 한 호텔에서 조각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에 달려간 적이 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작품은 뛰어난데 가격이 너무 비싼거다. 그래서 전시기간 내내 매일같이 호텔에 찾아가 작가들에게 식사와 음료, 맥주 등을 사주며 ‘전시 후 남은 작품을 내게 팔아달라’고 요청했다.
덕분에 전시 후 남은 작품들은 내가 일괄적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를 매일같이 다닐 수가 없으니 그 곳에 매니저를 두고 좋은 작가 및 작품을 실시간 발굴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덕분에 지금까지 LG구자경 명예회장 등 국내 기업가들에게 좋은 작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또 미국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임기 말 탄자니아 방문 시 탄자니아 대통령이 내 소유 작품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기증하기도 해 현재 작품이 백악관 기념관에 보관돼 있기도 하다.
이렇게 아프리카 조각에 대해 이해가 깊은 이들이 작품을 찾아줄 때면 그간 힘들었던 것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 우리나라에서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이해도는 어떤 것 같나?
아직은 초보단계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보니 왜곡된 정보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아프리카 쇼나조각이나 마콘데조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교수나 전문가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미술을 예술이 아닌 단순한 공예품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지식을 담은 책도 구하기 힘들어 일본이나 유럽, 미국 등에 출장가서 구입해오는 실정이다. 대중들은 관심 있어도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 그렇다면 대중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아프리카 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아프리카 조각 작가들을 초청해 조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관람객이 스스로 조각해보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전시회를 많이 기획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 언론이나 교육 분야에서도 관련한 뉴스나 강의를 많이 진행하게 되고 잘못된 편견을 없애고 예술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눈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도 동서양 미술에 편중하지 말고 아프리카 미술까지 시선을 넓힐 때가 됐다. 예술을 보는 눈이 넓어질수록 그 사회의 성숙도도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자체 문화 프로그램이나 사업에 아프리카 미술을 포함시킨다면 지역 주민의 문화역량 함량은 물론 관광산업으로도 꽤 각광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여기에 마나스아트센터도 힘을 보태고자 한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마나스아트센터 위치는 경기도 양평군 강성면 강남로 743에 있으며 무료로 관람(월요일 휴관)할 수 있다.
◇쇼나조각
짐바브웨 부족이 만드는 돌조각
천부적이고 창조적 재능 뛰어나
1950년부터 서구사회에 알려져
◇마콘데조각
탄자니아 마콘데 부족의 목조각
흑단나무에 칼로 정교하게 표현
가족·생활상 등 모계사회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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