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단상] '하류노인'에서 '과로노인'까지
김수진
neunga@naver.com | 2017-12-04 13:47:07
“칼바람이 몰아치는 새벽길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온종일 손수레 한가득 모아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은 불과 몇 천 원. 이들 곁을 지나치면서 ‘미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폐지 줍는 노인들도 말년이 이토록 궁핍하리라 예상했던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노후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지겠지’란 막연한 생각으로 미래의 불안을 달랜다.”
일본의 사회복지전문가 후지다 다카노리(藤田孝典)가 ‘2020-하류노인이 온다’의 속편으로 내놓은 ‘과로노인’은, 노후문제를 단순한 낙관론으로 치부한다면 대부분의 노인이 죽는 순간까지 노동을 해야 하는 암울한 미래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론 둘 다 우리는 잘 쓰지 않는 일본식 표현이다.
그가 말한 ‘하류노인’이란 저축한 돈도 일정한 수입도 없고 의지할 사회적 관계마저 없는 극빈층 노인을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과로노인’은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죽는 날까지 일에 시달리는 삶이다. 수입이나 저축은 물론 사회적 교류마저 없는 상태에서 사회보장제도까지 기대할 수 없다면 생계를 유지할 유일한 수단은 자신의 노동력밖에 없지 않은가.
65세 이상 노인이 4명 중 1명에 달하는 초 고령사회 일본에선 이미 이런 조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용자가 458만 명으로 438만 명에 달하는 60~64세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고령자 취업률은 20.1%로 프랑스 2.2%의 9배를 넘는다. 이들 대부분이 일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일할 의욕이 높아서가 아니라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인 일자리가 비정규직이나 단순 육체노동인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상황은 이런 일마저 할 수 없을 때다. 늙고 병들어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면 결국 하류노인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저자가 상담한 노인 중에는 열심히 일을 해도 빚만 쌓이는 사례도 있다. 이 노인은 월 300만 원의 연금 등 든든하게 노후를 준비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혼한 딸과 손주의 부양을 떠맡게 되면서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했고, 연금에 월급을 더해도 매달 빚이 쌓인다.
저자는 그동안 일본 사회가 노후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돌려왔다고 진단한다. 아울러 하류노인 탈출과 과로노인 예방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세금을 늘리되 개인 부담을 늘리지 않는 방법이다. 증세한 돈을 사회적 서비스 구축에 쓰면 가능한 일이다. 의료비, 요양비, 교육비 등 공적 서비스를 무료화한다면 개인 지출은 줄고 심리적 안도감까지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 이를테면 ‘공존’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노후의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여행과 적절한 운동, 가족들과의 행복한 일상을 노후에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앞에는 지금보다 더욱 가난하고 원하지 않는 노동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는 섬뜩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후에 최악의 빈곤에 시달리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개인적으로 저축과 재테크를 늘려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저자는 현금보다 중요한 노후대책은 현금이 없어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임을 강조한다.
가난을 불우한 이웃 구제가 아닌 제도를 통한 ‘사전예방’의 개념으로 다가가고, 비정규직이어도 생활에 어려움이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택 수를 늘리고 현금이 아닌 현물지급 서비스에 눈 돌리면서 납부한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들이 단순히 이상론이 아닌 합리적 방안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와 데이터를 주목해야할 때다. 남이 아닌 우리 모두의 미래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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