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수필] 호놀룰루에서

민순혜

joang@hanmail.net | 2022-12-02 11:47:36

수필가 민순혜

▲ 사진=pixabay 

호놀룰루에서                                                                                    수필가 민순혜
따르릉! 상대는 뜻밖에도 루빈(Rubin)이었다. 루빈은 전날 호놀룰루(Honolulu)행 기내에서 바로 옆 좌석에 앉아있던 인도계 미국인 남자였다. 그가 기내에서 친구랑 둘이서 여행을 왔느냐고 묻기에 나는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단체로 왔다고 했다.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함을 주면서 혹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덧붙였다. 비행기가 착륙하여 통로를 걸어 나오는데 그는 우리의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무심코 호텔과 성을 알려줬는데 이렇듯 전화를 하여서 정말 너무나 고마웠다. 미국은 호텔에서 숙박인의 이름을 모르면 방 번호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 곳이니까 하마터면 만나지도 못할뻔 했다.


나는 반갑게 그의 전화를 받으면서 우리는 지금 하나우마 만(Hanauma Bay)을 찾아가려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마침 점심시간이라면서 우리만 괜찮다면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주저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그렇잖아도 친구와 나는 ‘하와이 여행가이드’ 책을 꺼내놓고 교통편을 메모하던 중이었다. 그는 잠시 후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보면 루빈과는 인연이 정말 기이했다. 그날만 해도 단체 여행 일정대로라면 우리가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해서 그의 전화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늦장을 부린 탓에 단체여행객이 이미 시내 관광을 떠난 후여서 어쩔 수 없이 호텔 방에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 사진=pixabay

잠시 후 간단히 준비를 한 후 호텔 1층 로비로 들어서니 마침 우리 일행 중 남자 한 분이 우리를 아는척하며 다가왔다. 그는 비즈니스 차 여행팀으로 호놀룰루에 왔는데 아침 일찍 서둘러 개인 업무를 마치고 시내 관광을 하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던 참이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루빈한테 무턱대고 안내를 부탁은 했지만, 왠지 불안했는데 마침 한국인 남자가 동행하니까 한결 마음이 놓였다. 더욱이 그는 미국 본토에서 유학생으로 8년간 지내서인지 영어는 물론이고, 미국인의 풍습에 대해서도 익숙했다.


루빈이 호텔 로비로 들어왔다. 그는 고향이 봄베이이지만 호놀룰루 행 직항이 없어서 한국에서 하루를 머물고 왔기 때문에 무척 피곤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고 시내 여러 곳을 우회하여 운전하면서 가는 곳마다 설명을 해주었다. 차창으로 바라보니까 하와이는 정말 듣던 대로 너무도 아름다웠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짙푸른 수풀 너머로 멀리 보이는 코발트 빛 남태평양은 햇볕에 반사되어 한순간 숨을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특히 가로수인 야자수들이 숲을 이루어 차 안에 앉아있는 데도 그 푸르름이 가슴까지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하와이는 무역풍이 불고 파도가 높아서 세계 곳곳에서 서퍼들이 찾아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했다.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를 관광할 때 현지 가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세계적인 서핑명소인 선셋비치, 샌디비치, 마가푸해안 등… 아름다운 비치가 많다고 했었다.


하나우마 만에 도착하자 루빈은 그냥 되돌아가기가 뭣했는지 자신이 근무하는 연구소에 조금 늦겠다고 전화를 한 후 우리와 함께 해변으로 향했다. 하나우마 만은 해변 백사장까지 열대어들이 거의 나와 다녔다. 손을 뻗쳐서 잡으면 잡힐 것만 같았다. 

 

“어머나! 이 열대어들 좀 봐요!” 나는 너무도 신기해서 소리쳤더니 동행한 우사장이 말했다. "패키지투어를 하면 버스가 여기에서는 정차를 안 합니다. 한국 여행객들이 열대어한테 먹을 것을 아무거나 막 줘서 고기가 죽었거든요." 그 말을 듣자 오늘 아침 게으름을 피우다가 단체여행객을 놓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빈은 바닷속 비경을 봐야 한다면서 스노클링을 제안했다. 우리는 곧바로 ‘장비대여 숍’에서 물안경과 오리발을 대여해서 착용하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네 명이 나란히 물속을 유영하면서 열대어랑 나들이하듯 한참을 헤엄쳐 다녔다. 루빈이 정말 고마웠다. 

 

그 역시 동양인으로 낯선 이국땅에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을 텐데 단지 여행객인 우리한테 이토록 친절하게 대해주다니 정말 더없이 고맙기만 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가 여행의 진미를 느끼게 했다.


오후 2시경 루빈은 먼저 가겠다고 하면서 해변에 설치된 간이 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물을 뚝뚝 흘리면서 걸어 나오는데 햇볕에 반사된 그의 모습이 더없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저녁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 사진=pixabay

루빈은 좋은 사람이었다. 사실 그동안 해외여행을 하면서 많은 외국인을 현지 안내인으로 혹은 잠시 동행인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루빈은 왠지 특별했다. 언뜻 봐도 훤칠해 보이는 그의 외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모습 언저리로 은근하게 풍겨지는 뭔지 모를 우울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별빛이 반짝이던 밤, 호놀룰루 교외 어느 이름 없는 바닷가에서 루빈이 말했었다. 이민생활이 너무도 외롭다고… 그는 와이프와 봄베이에서 만나 결혼했지만, 그의 와이프는 호놀룰루의 종합병원 의사로 새벽 4시에 출근한다고 했다. 퇴근은 물론 빨리하지만 다음날을 위해 잠을 일찍 자야 하기 때문에 루빈은 늘 혼자 있다고 했다. 

 

그는 자주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면서 겨우 적적함을 달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루빈도 우리랑 같이 있는 게 너무도 즐겁다고 했다. 루빈은 자신이 우리의 가이드를 자청했다고 와이프한테 말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루빈을 만나서 와이키키 해변으로 갔다. 그곳은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가까운 곳으로 해변에 인접한 도보로 가는데 주변에 수많은 호텔과 유명브랜드상가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휘황찬란했다. 

거리에 가로등은 실제로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오래전에 원주민들이 고래사냥으로 생활을 할 때 그 기름으로 가로등을 밝힌 것이 유래 되서 그 당시도 관광용으로 가로등 대신에 기름을 태운다고 했던 것 같다. 붉게 타오르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고 걸으면서 우리는 저마다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걸었다. 

 

바닷내음이 묻어선지 살갗에 닿는 바람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날밤 우리는 걷던 길을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낯선 이국땅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보기도 했다. 루빈도 말없이 걸었다. 루빈은 마치 오랫동안 여행을 같이 다녔던 일행처럼 우리와 잘 어울렸다.


예정된 일주일이 지나고 나와 함께 왔던 단체 여행팀은 귀국하기 위해 호놀룰루 공항으로 갔다. 루빈과는 전날 작별 인사를 마친 터였다. 한국에서부터 같이 온 인솔자가 보딩 패스를 받고 있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지난 일주일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행은 정말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다가도 여행이라는 날개를 달면 엔돌핀이 마구 솟는 것이다. 특히 타지역을 여행하면서 현지인한테 느끼는 인정(人情)은 남다른 것 같다. 호놀룰루 여행도 그저 며칠간 휴식을 하러 온 것뿐이었는데 루빈을 알게 되어 뜻하지 않던 친절한 안내를 받고 여행의 즐거움이 더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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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약력

대전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수필집 '내 마음의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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