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겸한 ‘서정문학 모꼬지’…탐스런 사과만큼 충일한 기쁨

황종택

resembletree@naver.com | 2021-08-30 16:01:02

8월28∼29일 ‘선비의 고장’ 경북 북부 청송‧영양군 답사 [세계로컬타임즈 황종택 대기자]염천(炎天)의 뜨거움이 한풀 꺾였다. 조석으로 서늘함이 더해가고 여름도 끝나가는 가을 문턱. 서정문학 작가회(회장 한희정) 회원과 <서정문학> 이훈식 발행인, 차영미 대표를 비롯한 문인들이 8월 28~29일 ‘선비의 고장’ 경북 북부 청송과 영양군 일대에서 모꼬지를 했다.
첫날 첫 일정은 객주문학관 관람이다.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있는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주제로 한 문학관으로 2014년에 당시 진보제일고등학교 부지에 건립됐다. 소설 <객주>는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을 중심으로 민중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청송 출신의 소설가 김주영은 소설 <객주>에서 보부상들의 생활상은 물론 향토색 짙은 토속어와 속어를 거침없이 풀어내 문학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객주문학관은 작가 김주영의 집필실인 여송헌(與松軒) 등으로 이뤄져 있다. 1층 본관 소설 도서관은 작가 김주영이 소장했던 자료와 국내 간행 소설책들을 구비해 소설 전문 도서관을 구축했다. 그리고 1층 창작 스튜디오 전시관은 문화 예술에 도전하는 신진작가 및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예술 활동을 꿈꾸는 일반인들을 위해 문학·미술·사진 강좌도 열리고 있다.
객주문학관‧조지훈문학관‧오일도 생가‧서석지‧야송미술관 등

선비정신 계승‧민초들이 꿈꾸었던 ‘대동세계’ 실현의 꿈 공감

 

2층 본관 영상 교육실은 소설 <객주>를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고, 영상 교육 및 초청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2, 3층의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은 소설 <객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로 작품 관련 전시뿐만 아니라, 보부상들의 활동상이나 조선 후기 상업사를 엿볼 수 있는 조형물이 재현돼 있으며, 지게·저울 등 보부상 도구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작가의 <객주> 육필 원고 일부와 취재할 때 사용한 카메라, 수십 개의 철필 등 작가의 개인 소장품도 관람할 수 있다.

저녁 시간에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는 가운데 한희정 작가회장 서재에서의 담소, 야외 가든에서 주제발표 및 친목 시간을 가졌다. 이향숙 서정문학 낭송분과 위원장 겸 작가회 부회장의 시낭송, 최주식 시인의 '나의 문학 나의 작품세계' 주제의 강연, 작가회 여론 수렴 및 진단‧비전 제시 등으로 진행됐다. 

이틀째인 29일엔 영양으로 이동했다. 경북 영양은 문향(文鄕)이다. 일월면은 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의 고향이고, 영양읍 감천리에는 시인 오일도, 석보면에는 소설가 이문열의 생가가 있다. 먼저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 도착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제법 굵은 빗줄기 속에서 조지훈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을 보았다. 마을 입구에는 그의 문하생들이 세운 시비가 있고, 비에는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잡는다.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 바위 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 살아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 (중략) /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조지훈 선생이 태어난 호은종택은 조선 중기 인조 때 건립했다. 생가에는 조지훈 선생이 태어난 태실이 그대로 남아있고 인근에는 어렸을 적 수학했던 월록서당도 있다. 조지훈은 20세에 문단에 데뷔했으며, 해방 후 김동리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창립,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문화운동에 힘썼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의 일원이었으며 <승무> <봉황수> 등 250여편의 시를 창작했다.
주실마을에서 나와 영양읍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감천마을이 나오고 이곳에 시인 오일도의 생가가 있다.시인 오일도는 24세 때 등단해 1935년 사재를 털어가며 순수 시문학지 <시원(詩苑)>을 창간한 인물이다. 감천마을 중앙에는 오일도 시인의 생가가 있고, 오일도 시비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도로변 소공원에 세워져 있다. <저녁놀> 이라는 시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작은 방 안에 /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못피우고 /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 모가지 앞은 잊어버려라 / 하늘 저 편으로 둥둥 떠가는 저녁놀 // 이 우주에 저보담 더 아름다운 것이 / 또 무엇이랴 / 저녁놀타고 나는 간다 // 붉은 꽃밭속으로 / 붉은 꿈나라로."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로 발길을 옮겼다. 전남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부용원과 함께 한국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서석지(瑞石池)를 만났다. 정영방 선생이 광해군 5년(1613)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둔했을 때 조성한 것으로 연못과 정자로 구성돼 있다.

정영방 선생의 12세손인 국립안동대 정중수 교수의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문우들은 이해에 큰 도움을 받았다. 자양산 남쪽의 완만한 기슭에 위치한 연못을 중심으로 경정(敬亭)과 주일재(主一齋)를 배치하고, 이들을 담장으로 둘러싼 후 담장 밖 북쪽에 수직사를 두었다.경정은 넓은 대청과 방 2개로 되어있는 큰 정자이며, 주일재는 ‘운서헌’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 서재이다. 


주일재 앞은 연못 쪽으로 내밀어 돌로 쌓은 단을 만들고 그곳에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어 ‘사우단(四友壇)’이라 이름 지었다. 연못은 사우단을 감싸는 'ㅁ'자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연못의 동북쪽 귀퉁이에는 산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과 반대편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만들었는데 이를 읍청거, 토장거라 부른다. 읍청거는 맑은 물이 뜨는 도랑, 토장거는 더러운 물을 토하는 도랑을 의미한다.
연못의 이름을 서석지라 한 것은 못 속에 여러 개의 기묘한 돌무리가 있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읍청거 쪽 못 바닥은 암반이 울퉁불퉁 솟아난 모습이 마치 기암절벽이 솟아 있는 듯한데, 19개의 돌무리가 물속에 잠기거나 드러난 채로 있다. 이 돌무리들은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던 것들로 그 생긴 모습에 따라 신선이 노니는 돌(선유석), 구름 봉우리 모양의 돌(상운석), 물고기 모양의 돌(어상석), 별이 떨어진 돌(낙성석) 등으로 이름이 붙여져 있다. 자연재료를 인공적으로 가공, 배치해 정원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연을 최대한 이용해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고 돌 하나하나에 모두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선조들의 이상적인 자연관을 엿볼 수 있어 조선시대 민가 정원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모꼬지의 마지막 관람 장소는 군립청송야송미술관이다. 폐교가 된 신촌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개관한 야송미술관에는 야송 이원좌 화백의 작품을 비롯해, 지역의 우수 작가, 협회의 기획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원좌 화백이 수집하거나 기증받은 미술 관련 서적 2만여 권이 소장된 도서관, 이원좌 화백의 작품과 국내외 기증 작품이 보관되고 있는 수장고도 있다.
야송 이원좌 화백은 청송의 대표적인 한국 화가로, 1939년 경북 청송 파천에서 출생해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라는 길이 46m, 높이 6.7m의 실경산수화 걸작을 남겼다. 한 프레임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역작으로서 그 웅장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실제 산세를 그대로 큰 화폭에 담아, 마치 청량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경제수준에 버금가는 정신문화 창달에 힘써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이번 모꾜지에서 희망을 보았다. 개인의 영달보다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벼슬을 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모습을 보인 선비 정신의 계승과 함께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면서도 국난기에 맨 먼저 의거에 앞장선 보부상 같은 민초들이 꿈꿨던 ‘대동세계(大同世界)’가 바로 그것이다.
청송‧영양의 사적지와 문학관들이 그 역사성과 당위성을 보여주었다. 문학기행을 겸한 서정문학 모꼬지에서 함께 한 문우들은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만큼 충일한 기쁨을 한 아름씩 안고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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