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실체를 파헤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박 특검팀은 새롭게 임명된 10명의 파견검사들을 포함한 내부 업무분장을 마무리 짓고 13일부터 분야별 수사에 나선 것이다.
주목되는 바는 특검팀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죄’ 적용 여부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추가 수사 필요성을 언급한 게 개연성을 보였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11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의혹을 조사한 결과,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 기록 및 증거 자료를 인계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뇌물죄 적용 여부와 관련해 들여다 본 의혹은 삼성그룹의 '최순실-정유라 모녀 특혜 지원', 롯데그룹에 대한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 강요, SK그룹에 대한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 요구 등 크게 세 가지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지난달 말 세 대기업과 함께 국민연금공단, 기획재정부, 관세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전방위로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또 관련 기업 총수와 공무원들을 불러 조사해왔다.
박영수 특검도 이미 박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박 특검은 특히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 출연금 774억원 전부를 대상으로 뇌물죄 적용을 전제로 수사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박 대통령은 이미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 당시 ‘주범 격 공범’으로 규정됐고, 연장선상에서 지난 9일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원들로부터 탄핵소추됐다.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 여부만 남겨 둔 대통령 권한 직무정지 상태의 피의자 신분이다.
특검팀에 주어진 책무가 무겁다.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한 경호실과 간호장교, 미용사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도 예고하고 있다. 더불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국정농단 묵인 및 직무유기, 검찰수사 개입 여부도 밝혀내야 한다. 이밖에 청담고·이화여대 입시·출결·성적 특혜 의혹과 관련한 정유라씨 소환조사도 별도로 이뤄질 예정이다.
사실 특검을 초래한 것은 검찰이다. 뒷북치기 수사 진행을 한 탓이다. 검찰이 10월 26일 최순실씨 의혹과 관련해 미르·K스포츠재단 사무실, 재단 기금 모금 통로였던 전경련, 최씨와 광고감독 차은택씨 집 등을 압수 수색했다. 언론이 두 재단의 말도 안 되는 행태를 처음 보도한 지 92일, 시민단체가 고발한 지 27일, 사건이 수사팀에 배당된 지 21일 만에 수사를 착수했으니 얼마나 늑장 수사를 했는지 알만하다. 뒤늦게 구속됐지만 최씨·차씨 등 주요 수사 대상자들은 해외로 잠적했고, 핵심 증거들은 인멸됐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주면서 수사를 '허락'하자 수사 시늉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통령이 최씨 국정 농단 일부를 인정하고 사과하자 면피용 압수 수색에 나섰다.
경위가 이런 만큼 박 특검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크다. 이번 수사는 새 시대를 열어가는 중대 변곡점(變曲點)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상황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박힌 권위주의적 정경유착을 완전히 뽑아버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박 특검팀은 ‘국민만 바라보고 수사하라’는 말에 덧붙여 ‘시대정신’을 더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자 한다. 이번 수사는 구(舊)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이라는 소명의식을 지니고 특검팀이 일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우려 또한 적잖다. 무엇보다 한정된 시간(최장 120일)이다. 그동안 특검 사건은 수사 항목이 5개 안팎이었는데, 이번 특검은 수사 대상으로 된 항목만 15개다. 수사 범위가 워낙 넓고 등장인물도 다양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는 이유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의미는 논외로 하고 특검법에 따른 특검 임무에만 충실해야 한다. 성과와 평가가 아닌 실체를 드러낼 수 있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원만한 성품에 대인관계 폭이 넓은 박 특검팀은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을 매섭게 옭아낼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파사현정 정신으로 엄정한 잣대로써 철저한 수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