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일보 조사위원 탐방단 일행이 7월 11일 오전 서백두에 오른 후 바라본 천지 모습. 백두산은 우리나라 최고봉으로 구름과 운무로 인해 천지를 볼수 있는 날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탐방단은 전날 북백두에 이어 이틀 연속 천지를 감상하는 행운을 얻었다. |
[이우춘 세계일보 조사팀장]세계일보 조사국에서는 7월 8일부터 13일까지 압록강 유역 북한접경지역과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白頭山)을 탐방했다. 조국통일의 정론지 세계일보가 민족정기를 발양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조사위원 탐방으로 올해 열세 번째다. 선조들이 지켜온 우리 영토를 중국땅을 통해서 가야하고 중국이 관리하는 모습에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는 것을 실감한 여행이었다. 일행과 함께 이동하며 보고 느낀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 ▲ 백두산에 자생하는 야생화(조밥나물). |
전국에서 온 67명의 탐방단은 인천항을 나서 다음날 아침, 자욱하던 바다안개가 걷히고 북녘 땅이 보이는 단동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장은 배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인파로 아수라장이다. 심사를 마치고, 탐방단은 2대의 버스에 나눠 탔다.
버스는 우측으로 황금평과 조·중 압록강 신교 그리고 강 넘어 신의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단동 시내에 도착했다. 황금평을 경제특구로 육성하고자 중국이 단독으로 조·중 압록강 신교도 건설하였지만 장성택 처형 여파로 진척이 없다. 다리도 현재는 무용지물이다. ‘조·중변계
| ▲ 백두산에 자생하는 야생화(인가목). |
조약’에 의해 황금평은 북한 땅이다. 북한과 중국이 1962년 비밀리에 체결해 1964년 의정서 교환으로 발효된 조약은 양측 국경의 섬과 사주에 대한 영토권을 열거하고 있다. 또한 백두산 천지를 절반씩 나눴다. 천지를 경계에 넣지 않은 북한에 비해 중국은 천지도 나눠 절반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한 술 더 떠 중국은 공항건설, 국제 스키장 건설, 무분별한 광천수 생산 등 백두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남북의 공동대응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낡은 국가 개념, 인류번영 위해 새 정립 필요
위화도를 따라 올라가 압록강 상류에서 유람선을 탔다. 푸른 물이 제법 빠르게 흐른다. 배 양쪽으로 북한 소유의 섬들이 유유히 스쳐 지나간다. 집단 농장의 밭에선 소를 앞세워 쟁기질하고 아낙은 김을 맨다. 강둑에선 누런 황소와 하얀 염소가 풀을 뜯는다. 북녘 아이들은 고기잡고 멱감고 물장구 친다. 조각배를 탄 장사꾼은 물건팔이에 여념이 없다. 더없이 한가로운 풍경에 북한군 초소들과 총을 멘 북한 군인들이 어색하다.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현실과 가상에서 시공을 초월해 소통하는 초네트워크(supernetworks) 시대에 북녘 땅만은 발 딛을 수 없다. 동포와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다.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국가의 정권에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한 때문 아닌가. 인류번영을 위해 낡은 국가 개념에 대한 새 정립이 필요한 때이다. 애통함을 뒤로 한 채 뱃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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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본 졸본성 모습. 해발 800m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로 고구려 주몽이 건국초기 도읍으로 정한 곳이다. |
고구려의 기개와 숨결 졸본, 홀본, 흘승골성
| ▲ 백두산에 자생하는 야생화(돌꽃-수꽃). |
짧은 유람을 마친 탐방단은 백두산을 향해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렸다. 산자락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 아래 분지에는 옥수수 밭이 어김없이 펼쳐진다. 가끔씩 모를 심은 논이 보인다. 벼농사는 대부분 중국동포들이 한다고 한다. 꽤 많은 논들이 보일 무렵 졸본성을 지나고 있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은 광개토대왕릉 비문의 홀본, 위서의 흘승골성으로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 추모왕(고주몽)이 혼강(渾江)을 낀 비옥한 땅, 해발 800m 깍아지른 절벽 위, 천혜의 요새에 터를 잡았다. 국내성 천도까지 빈약했을 건국 초기 40년 동안 강대국들과 맞서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다. 광활한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선조들의 기개와 숨결이 이천년을 넘어 아직도 느껴진다. 날이 저물도록 달려 백두산 자락 송강하에 여장을 풀었다.
분단의 고통, 백두산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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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백두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들른 비룡폭포 모습. |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 길은 크게 네 가지다. 길림성 연길에서 이도백하로 가는 북백두 코스와 길림성 통화에서 송강하를 거쳐 가는 서백두 코스, 또 천지의 압록강 발원지를 볼 수 있는 남백두 코스, 마지막으로 전체가 북한 관할로 최고 높이 장군봉(2,750m)을 볼 수 있는 동백두 코스다. 탐방단은 통일을 염원하며 양일간 북백두와 서백두 코스로 등정했다.
먼저 북백두다. 10일 등정에 오르기 전, 국기 등 현수막 사용과 구호를 외치는 것이 금지라고 가이드가 안내한다. 백두산 공정의 일환으로 다분히 한민족을 의식한 것이다. 장백산이란 매표소 간판이 떨떠름하다. 백두산이 아니다. 중국을 통하지 않고는 백두산에 오를 수 없으니 어찌하랴. 분단의 고통, 백두산의 아픔이다. 북백두행 순환버스에 오르니 홍해를 가르듯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쭉 뻗어 나아간다. 승합차량으로 갈아타는 승차장이 여행객들로 북새통이다. 한참을 기다려 승합차량에 올랐다.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마구 내달린다. 가파른 비탈길이 160여대 승합차량으로 장사진이다. 그 끝은 하얀 잔설(殘雪)과 백색의 부석(浮石)들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백두산이라 부르게 된 연유다. 급정거 급회전으로 튕겨져 나갈듯한 차내는 연신 비명이다. 그사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야생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명은 야생화의 자태가 자아낸 탄성에 잦아든다. 곡예 운행으로 20여분 만에 천문봉 정상 코앞까지 다다랐다. 천문봉 주위가 천지를 보려는 구름 인파로 북적인다. 인파 사이로 간신히 천지를 볼 수 있었다. 한반도 산줄기가 뻗어 나간 곳이다. 민족의 여명을 열고 반만년 역사를 함께한 민족의 영산, 백두산. 마침내 그 기상이 가슴을 두드린다. 장엄한 에메랄드빛 칼데라호(caldera湖) 천지를 병풍처럼 둘러친 위풍당당한 16개 봉우리들이 장관이다. 벅찬 감동이다. 위용을 뽐낸 천문봉 절벽 아래로는 희고 검은 부석층이 떨어져 나갈 듯 위태롭다. 발해 멸망의 단초가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폭발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다.
| ▲ 백두산에 자생하는 야생화. |
뜻밖의 전령, 곧 통일의 시대
정상에서 ‘야호’라도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관리원의 감시가 삼엄하다. ‘대한민국 만세, 조국통일 만세’라고 소리 없는 함성을 내질렀다. 민족의 영산에서조차 자유를 억압받고 있으니 한 세기 전 간도협약과 반 세기 전 ‘조·중변계조약’에 비분강개할 뿐이다. 함성에 대한 응답인가.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가 날아와 앉는다. ‘곧 통일의 시대가 열린다’고 전하는 뜻밖의 전령이 아닐까.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강렬한 통일의 기운을 안은 채 하산하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 ▲ 백두산에 자생하는 야생화(산각시취). |
백두산 호랑이의 포효, 비룡폭포
비룡폭포 탐방로 옆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에 이끌려 폭포 앞에 도달했다.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듯 새하얀 포말이 쏟아져 내린다. 웅장한 스케일에 압도된다. 사방은 기암괴석이다. 격렬히 흐르다 굳어버린 용암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자연이 빚은 비경에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폭포는 천지의 달문까지 오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달문 가는 터널 일부가 무너진 후 중국정부가 폐쇄했기 때문이다. 천지에 손도 담궈 보고 싶었지만 이내 발길을 돌렸다.
| ▲ 백두산에 자생하는 야생화(꽃쥐손이). |
서백두 천지 가는 길 야생화 천지
11일 서백두로 향했다. 매표소 입구에서 좁은 숲길을 지나 서백두행 순환버스를 탔다. 울창한 원시림이 갑자기 사라진다. 듬성듬성해진 나무들 사이로 백두산 야생화가 얼굴을 내민다. 간간이 보이는 나무도 곧 자취를 감춘다. 확 트인 시야로 들풀에 휘감긴 백두산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올망졸망 피어난 들꽃이 장관이다. 이름 모를 들꽃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서백두 중턱의 주차장에 이르렀다. 상큼한 풀내음이 온 몸을 감싸며 정상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통일을 염원하며 첫 계단부
| ▲ 백두산에 자생하는 야생화(두메양귀비꽃). |
터 한발 한발 내딛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지천으로 핀 야생화가 지친 몸 마음을 달랜다. 벌써 1,442번째 계단이다. 어제 보았던 천지가 오늘도 멋지다. 새로 세운 37호 경계비가 북중 국경을 알린다. 천지를 향해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오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야생화 천국 고산화원, 천태만상 금강대협곡
하산 길에 고산화원과 금강대협곡에 들렀다. 고산화원은 거대한 군락을 이룬 야생화들의 천국이다. 수목한계선 위 초원지대의 야생화들에 비해 큰 키의 미모를 뽐낸다. 탐방단은 풀숲의 형형색색 들꽃에 흠뻑 빠졌다. 1,800여종의 소중한 우리네 꽃들을 뒤로하고 탐방단은 금강대협곡에 도착했다. 원시림을 헤치고 나가니 협곡이 펼쳐진다. V자형 계곡 사이로 솟아난 천태만상의 부석들이 기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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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일보 조사위원 백두산 탐방단 일행이 지난 7월 12일 압록강 단교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
단교처럼 시간이 멈춘 신의주
| ▲ 백두산에 자생하는 야생화(쥐오줌풀). |
통화에서 하루를 쉬고 단동으로 향해 마지막 여정으로 6·25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단교(斷橋)에 올랐다. 다리 끝에서 본 신의주는 단교처럼 시간이 멈춘 듯하다. 세상과 단절된 모습이다. 고층빌딩이 들어선 단동과 대비된다. 북한의 가느다란 생명줄일까. 단교 옆 신 철교 위로 화물차들이 느릿느릿 답답하게 드나든다.
탐방단은 단동항에서 귀국길에 올라 소감을 나눴다. 통일에 대한 염원과 민족에 대한 걱정으로 인천항까지의 항해가 너무나 짧았다. 백두산은 우리의 영토이자 민족이 반만년을 함께한 역사적 문화적 유산으로 삶의 일부다. 탐방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 통일은 물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지켜내야 할 백두산임을 조사위원들에게 일깨워줬다.
글·사진=이우춘 세계일보 조사국 조사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