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품전시가 개최되고 있으며, 수많은 작업자가 자신의 작품을 탄생 시키기 위해 내적·외적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관람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작가의 작업 결과물인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갤러리에서 작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완벽한 소통이 아닌 순간의 감성 소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변성진의 <예술가, 그게 뭔데?>는 이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갈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예술이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등 예술가 이야기를 군더더기없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구성했다. 관련 릴레이 인터뷰 중 열두 번째로, 이번에는 지속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현실 문제점에 질문을 던지는 레나 작가를 소개한다. ▲ aboma #04_100x65cm 2021.ⓒ레나 작가 Q: 자기소개. A: 안녕하세요. 자기소개에 익숙하지 않아 늘 곤란한 레나입니다. 지금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레나라는 이름은 좋아하는 단어인 Liberty, Emotion, Nature, Anarchism의 앞자리 단어를 따서 지었습니다. 작업을 할 때는 실제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기도 했고, 제 본명을 좋아하지 않아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됐죠. Q: 작업 또는 활동 사항이 궁금합니다. A: 요새 하는 작업은 제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부분이나 철학적인 주제를 이미지와 결합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초창기에는 사진이라는 장르가 주는 ‘시간-공간을 순간적으로 정지’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순간적인 장면들을 포착하는 일에 집중했었어요. 그러다가 답답함을 느꼈고,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는 제가 생각하는 것이나 철학적인 주제들, 사회적인 이슈들을 사진이라는 장르로 보여주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1등보다는 2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릴 때 미스코리아 대회 같은 걸 보면 ‘선’에 당선된 사람이 제일 안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세 명이 결선에 올랐는데 유일하게 이름이 불리지 않는 참가자니까요. 그러다 보니 주목받는 것보다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관심이 더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인가 ‘작업이 한 방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평을 들은 적도 있죠. 그렇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저에게는 더 중요하니까, 그렇게 믿고 느리지만 꾸준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제한된 자’로서의 1세대 여성 작가들을 오마주하는 작업을 해왔고요, 이 작업은 현재도 계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작업이 중단되기는 했는데,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있어요. 2020년 초 코로나와 중국인 혐오를 연결한 프로젝트를 했었고요. 아직 발표하진 않았지만, 코로나 동안 서울의 밤거리를 찍은 작업도 꾸준히 해왔습니다. 2021년 자궁 관련 질환을 앓으면서 자궁적출에 관한 의사의 권고를 듣고 여성과 자궁, 그리고 여성 성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서 제 과거를 떠올리게 됐는데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어릴 적에 겪었던 아동 폭력과 신체에 남은 흔적들, 여성성과 여성의 장기 등을 결합해 작업하게 됐습니다. 여러 병원에 다니면서 아직 미혼이니 자궁을 적출하면 안 된다는 말도 들었고, 아주 쉽게 자궁을 적출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들이 말하는 이유가 재미있었어요. 임신 가능성과 성관계에 있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반대의 이유였는데, 여성이라는 ‘성(sex)’이 단순히 신체 기관에서만 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가 잊고 있었던 어릴 때의 성추행 경험이 떠올랐는데, 2차 성징이 발현되기 전의 소아에게도 성이라는 게 존재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생각들을 모아서 데이트 폭력을 경험하신 작가와 의기투합해 텀블벅으로 책을 내게 됐고, 그 책이 매개체가 돼 이 내용을 2021년 이인 전과 개인전으로 선보였어요. 이 작업으로 올해 멕시코에서 열리는 단체전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개인의 일에서 사회적 문제로 확장된 개념으로서 대한민국의 출산 정책을 톺아보면서, 임신 중단에 관한 사안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 출산자인데, 이미 20대에 비출산을 결심했거든요.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환경적으로 인구수는 줄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런 제 결심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일을 수없이 겪었어요. 이와 반대로 출산을 원하지만, 상황이 안 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도 있을 것이고, 임신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임신을 한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문제일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demian #03_43x38 2022.ⓒ레나 작가 실제로 저희 어머니는 ‘병원에서 딸이라고 지우라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아들 타령하는 게 너무 싫어서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말을 저 어릴 때 무척 많이 하셨거든요. 제가 태어날 때는 태아 성감별에 의한 임신 중단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갑자기 불법이 될 뻔한 상황이 2017년 있었잖아요. 종족 번식이 남녀 모두에게 있는 본능이라면 그 본능에 관한 결과는 둘 다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죠. 육체적으로도 여성이 온전히 책임지고, 사회적 인식은 더더욱 그렇고요. 또 종족 번식을 위해서는 성행위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물론 완전한 체외 수정의 경우를 제외하고는요, 이 과정에서 성행위는 여성에게 온전히 출산의 의미만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도 하게 됐고요. 2021년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네덜란드에 잠깐 머문 적이 있는데 라익스 뮤지엄의 수태고지 회화에 그려진 마리아의 얼굴을 보다가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마리아는 임신 없이 출산한 성녀잖아요. 그렇기에 어딜 가나 사랑을 받는 거고요. 마리아의 육아나 마리아의 욕망은 사회적으로 거세되죠. 수태고지를 듣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마리아의 그림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러다 인상을 쓰고 있는 마리아의 동상을 보고, 이게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한국의 사회 정책에 관한 모노드라마 대본을 써서 배우를 섭외해 비디오를 찍었죠. 서울과 강원도 있는 기자석들을 촬영했고요. 마리아에 관한 시를 쓰고 그걸 나무 판에 새기는 형식의 오브제를 만들었어요. 세 분의 작가들을 섭외해서 전시를 기획하면서 제 작업도 살짝 집어넣어 2022년에 전시를 하게 됐어요. 기자석을 찍은 사진의 제목이 ‘I won’t let you go unless you bless me’였는데, 성경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거든요, 전시를 보러 왔던 외국인들이 설명을 듣고 빵빵 터지고 갈 때 쾌감이 있더라고요. ‘이 작업을 어떻게 발전시킬까’가 지금 하는 고민이에요. 또 다른 일로는, 2022년에는 오랫동안 써왔던 글들을 모아서 책이 발간되는 기쁜 일도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라는 책인데요, 올해 문학 나눔에 선정된 책입니다만(내용이 나쁘지 않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판매는 그리 많이 되지 않아서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어요. 인터뷰를 읽으시고 관심이 있으시다면 구매나 도서관 신청 부탁드립니다. Q: 지금 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솔직하게 말하자면 잘 모르겠어요.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지?’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민해요.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고도 가끔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아직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찾아올 때 메모하면서 어떻게 이걸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볼까 고민하면서 묵묵히 견디고 있습니다. 이 일이 제 존재 이유라거나 어떤 대의가 있다거나 그런 거창한 이야기하고 싶긴 하지만, 솔직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은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이 일은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일기에 쓰는 게 아니라기보다 많은 사람에게 말하고 싶기에 하는 소중한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 unless you bless me #01 75x75 2022.ⓒ레나 작가 Q: 추구하는 작업 방향 또는 스타일이 있다면. A: 초기에는 후지와라 신야를 좋아했었고, 공부를 계속하면서 소피 칼과 낸 골딘, 프란체스카 우드먼의 작업을 무척 좋아했었는데요, 어느 시점부터 시각 예술가보다는 문학이나 철학, 영화에서 영감을 더 많이 받게 됐어요. 작업하다가 막히면 에이드리언 리치나 루스 이리가레, 실비아 크리스테바, 아니 에르노, 권여선, 김혜순, 실비아 플라스, 에밀리 디킨슨, 마가렛 앳우드의 책을 읽거나 잉마르 버리만의 영화, 무성영화, 할리우드 고전 영화를 보면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일까 조금 작업이 한눈에 들어오기보다는 산발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추구하는 작업 방향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까진 없지만,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것보다는 조금 지저분하게, 러프하게 마감을 하는 게 제 성향인 것 같아요. 완벽하게 정리를 못 하는 성격 탓도 있을 테고요. 요즘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로저 발렌, 타린 사이몬, 알렉 소스가 있는데요, 그들의 작업을 보면서 부러워하면서, 가끔은 좌절도 하면서 많이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아직은 성장하는 단계니까 확실하게 내 스타일은 이거라고 말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추구하는 작업 방향이라고 한다면 항상 하는 얘기인데, 제가 뉴욕에 처음 사진을 배우러 갔을 때 강사였던 다윗이 했던 말을 늘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다 만족시키려고 하지 마라. 그중의 한 명이라도 네 작업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면, 그게 성공이다” 그런 작업을 하고 싶어요. Q: 영향을 받은 작가(롤모델) 또는 작품, 이유는. A: 롤모델을 생각해 본 적은 없고요, 영향을 받은 작가는 너무나 많고 좋아하는 작가도 너무 많아서 하나를 꼽기가 어려워요. 변덕이 심해서인지 마음속 최고가 늘 바뀌기도 하고요. 지금 막 생각이 나는 작가는 타린 사이몬, 도나 마르, 마리 엘렌 마크가 떠오르네요. Q: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A: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내가 뭐라고 이런 거창한 것에 답을 내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늘 먼저 드는데요, 요즘에는 예술이라는 건 결국 현실에 보이는 문제점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정답은 없고, 길은 너무 여러 가지니까요. 내가 생각하기에 무언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애정을 가지고. 그런 거요. Q: 협업에 관한 생각. A: 저는 늘 환영이에요. 생각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해보고 싶은 생각이 늘 있습니다. Q: 본업 병행작가와 전업 작가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에 대한 내 생각 또는 견해. A: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답은 없으니까요. 사실 그 두 가지를 어떻게 나누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기준이 뭘까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이제 통용되지 않는 시대잖아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도 잘 모르겠고요. 작업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작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나이가 들수록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나 사회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점점 늘어나기도 하고요. 본업과 부업의 기준도 모호하고요. 직장을 다니면서 부모님이 물려받은 건물에서 임대료를 받아서 임대료가 더 높다면, 그 사람의 직업은 직장인인가요, 임대인인가요? 유난히 예술가에게만 ‘전업’이라는 잣대를 크게 들이대는 것 같아요. 예술이 경제활동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은데, 저는 예술가도 노동자라고 보는 견해라서, 제 일을 꾸준히 해나가려면 경제적 활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환경이 좋아서 작업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고요. 문제는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하는 주변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들 모임에 가거나, 혹은 직장인들 모임에 가면 단정을 지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한둘씩은 꼭 있죠. 그런 부정적인 말을 듣게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그런 기준만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던 자신이 책임만 지면 된다고 생각해요. ▲ Yeoja A Jessie 50x80cm 2018.ⓒ레나 작가 Q: 작업자이지만 전시 기획도 하는데 기획에 있어 어떤 점을 중요시하나요. A: 기회를 주면 소소하게 하는 거라서,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일단 기회를 주면, 공간을 가진 주인이 생각하는 것을 먼저 듣고, 주제를 정하고, 작가들을 섭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작업을 공간 안에 어떻게 배치하는가, 작가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가진 접점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서 홍보할 것인가 정도예요. 아직은 완전 생초보라 틈날 때마다 좋은 전시를 보면서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작업자에게 철학이란 무슨 의미인가요. A: 자신만의 본질을 가지는 것? 그런 게 아닐까요. ‘진정성’이나 ‘창조성’에 집착하면 안 되겠다고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생각했었거든요. 그 글에서 중요한 건 자신만의 스타일, 본질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쓰여 있었는데 무척 공감했어요. 같은 장면을 봐도 집중하는 포인트는 다 다르니까요. Q: 작업에 있어서 자신만의 스타일이란 무엇일까요. A: ‘제 스타일은 이런 것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럴 내공은 없고요, 지금은 제가 말하는 방식, 약간은 일화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보여주는 것, 이야기 전개가 있는 방식의 작업이 지금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조금 더 오래 하다 보면 눈에 보일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은. A: 일단 확정된 것으로는 내달 단체전에 참가하고요, 5월 개인전이 잡혀 있습니다. 작년에 선보였던 작업을 발전시킨 형태에요. 사진, 영상, 텍스트, 그림이 섞인 복합 미디어 전시를 만들 예정이에요. 재미있게 구상 중입니다. 연신내에 있는 루트라는 공간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추가로 단체전 계획이 하나 더 있긴 한데,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전시를 위한 촬영을 위해서 2월 폴란드에 갈 예정인데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인터뷰: 변성진 작가/ 자료제공: 레나 작가/ 편집: 김영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