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 그리운 청산도
홍윤표
sanho50@hanmail.net | 2022-04-03 14:59:31
시인 유은희
그리운 청산도
시인 유 은 희
눅눅해진 이 고요를 둘둘 말아
외딴 섬 청산도 산자락 마당에 활짝 펼까
쨍쨍 마르면 거기 목청 좋은 새 두엇 앉았다 가라고
한나절 달래랑 쑥이랑 소쿠리 수북해져서
서편제길 내려와 굴뚝 연기 모락모락 피워 올릴까
창호지에 별 몇 켜놓고 배 깔고 엎드려
연필로 사각사각 긴 밤 옆구리부터 갉아 들어볼까
뜻하지 않은 전화벨 소리 길게 울리면 혹시 몰라
대문부터 활짝 열어 놓고 꾀꼬리 소리로 ''여보세요'' 할까
뱃고동 울리면 쪽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머리카락을 매만질까
마루를 빛나게 닦아 놓고 각시볼락찜이랑 미역챗국이랑
고동무침이랑 톳무침이랑 가지가지 밑반찬을 만들까
괜히 설레는 담장 호박꽃에게 피식 웃어주며
나는 절대 안 설렌 척 멸치똥이나 한 쟁반 바르며 기다릴까
목이 긴 언덕길로 노을이 눈시울 붉어 넘어가더라도
깜깜해지면 손전등 하나가 총총 내려올지도 모르니
마당가 수선화 한 송이 물잔에 꽂을까 꽂아둘까
누렁소가 남기고 간 풍경 잘 닦아 처마 끝에 걸어 놓으면
오래된 집의 목젖 같은 그것이 가끔 울려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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