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 모 심는 날

홍윤표

sanho50@hanmail.net | 2022-06-12 15:58:23

시인 유 은 희

모 심는 날

시인 유 은 희

 

떠듬떠듬 한글을 배워 쓰던 숙모들

무논을 펼쳐 들었네

발목을 구름 뒤로 옮겨 심으며

꾹, 꾹, 생을 적어갔네

바보 삼촌과 아버지는 중천에서

한 문장씩 밑줄을 그었네

돌림노래 무성한 논두렁에서

노란 주전자처럼 갸웃해진 나는 초경을 맞았네

동백아가씨에서 여자의 일생까지

숙모들은 눈물과 웃음을 반반 잡아 썼네

손으로 쓱쓱 발자국을 지워내며

뒷걸음질 칠 때마다 해는 점점 닳았네

애써 팽팽하던 못줄도

목이 멘 이별가에서 그만 출렁했네

논머리까지 치밀어 온 바다는

목울음만 한 노을을 삼켜 들었네

못줄 밖으로 밀려 쓴 숙모들의 이야기가

하늘 한 배미를 붉게 물들였네

거머리 같은 가난을 품앗이하고

산허리 한 짐씩 업고 저물었네

굽은 등에서 폐경의 바람이 일었네

 

가 갸 거 겨 고 교

어린 개구리들 밤새 논을 따라 읽었네

숙모들 지붕위로 한 움큼의 별들이

볍씨처럼 흩뿌려지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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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력 ▣

전남 완도 청산도 출생. 원광대인문대학원 문예창작과 졸. 

시집 『떠난 것들의 등에서 저녁은 온다』 『도시는 지금 세일 중』 『사랑이라는 섬(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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