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강의 땅따라 물따라] 곡성 합강과 인제 합강
news@segyelocal.com | 2021-10-15 16:44:13
우리나라 하천을 살펴보면 합강(合江)이란 지명이 다수 등장한다.
두 개 이상의 개천이나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세를 말하는데, 이미 알려진 곡성군 합강과 인제군 합강이 전설 같은 역사성을 품고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풍수지리서인 《명산론》<二氣篇>에 “산과 물이 만나면 음과 양이 모이고 음과 양이 모이면 생기가 일어난다.”고 했다. 음양의 기운이 조화롭게 만나 강해지기 때문에 명당이 형성되기 쉽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명소에 필연적 역사적 스토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곡성 합강에 태어난 월파(月坡) 류팽로(柳彭老) 선생은 성균관 유생으로 공부하던 중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했다.
고향인 전남 곡성으로 돌아와 의병 500여 명을 규합해 의병장으로서 금산성에서 왜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류팽로 의병장이 선봉장을 맡아 맹렬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적진을 탈출했다.
이때 왜적이 고경명 장군을 칼로 치려는 순간 류 의병장은 육탄으로 방어함으로써 목이 땅에 떨어져 향년 39세로 순절(殉節)했다. 류 의병장 머리를 보자기에 싸 말에 실었다.
말은 합강 마을까지 300백 리 길을 달려와 류 의병장 부인의 치마폭에 조심스럽게 전달하고 장사 지낸 후 부인은 자결했다. 그리고 말은 9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다가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전란에 동고한 충직한 말을 기리기 위해 '의마총(義馬塚)'을 만들어줬다.
인제군 합강은 내린천과 인북천이 합수해 흐르는 물이 합강정을 환포하며 소양호로 흐르고 있다. 원통에서 흘러온 합강 상류(덕산리)에 한국동란 때 피맺힌 애한(哀恨)이 서린 리빙스턴 교(Livingston Bridge)의 슬픈 스토리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유엔군 제3군단이 북한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아서 후퇴하게 됐는데, 동쪽 기린면 방향으로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다리가 없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홍수가 됐다. 결국 강을 건너지 못하고 싸우다가 결국 군단이 전멸했다. 당시 한미합동작전을 지휘했던 리빙스턴 중령은 총에 맞고 후송을 갔다. 그는 병원에서 “합강 원통 쪽 상류에 다리가 있었으면 수백 명이 살아있을 텐데!” 라며 한탄했다. 총상에 의한 과다 출혈로 결국 병상에서 죽고 말았다.
리빙스턴 중령은 죽기 전에 미국에 있는 부인에게 ‘내가 죽거든 사재(私財)를 동원해서 이곳에 다리를 놓아 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 후 그의 부인은 남편의 뜻에 따라 사재를 털어서 이국(異國) 인제 합강에 다리를 만들었고 다리 이름을 ‘리빙스턴교’라고 명명했다. 1999년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 때 당시 연대장이었던 손영찬 대령은 미국의 리빙스턴 가족을 찾아 초청하려 했으나 연락할 수 없다는 연합사 통보를 받고 몹시 아쉬워했다고 한다.
두 합강에 등장한 두 분은 백척간두의 전투 상황에서 의롭게 죽었다. 한분은 고경명 장군을 위해서, 한 분은 홍수로 건너지 못한 부하의 죽음을 교량 설치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거룩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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