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 구멍 난 양말

홍윤표

sanho50@hanmail.net | 2022-07-14 17:22:51

시인 이병연

구멍 난 양말

                 시인 이 병 연

 

양말 끝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한 구멍

가만히 들여다보니

엄지발가락의 얼굴이 편안합니다.

 

끝날 줄 모르는 지초봉 경사로에서

발끝에 수없이 부딪히는 충격을 오롯이 받아낸 양말

 

얼음장 같은 내 손 붙들고

여자는 몸이 차면 안 된다고

쓰디쓴 익모초즙 들고

줄행랑치는 나를 발이 닳도록 쫓아다닌 어머니는

집안에 들이치는 한파를 온몸으로 받아낸

삭지 않는 나일론 양말이 아니라

닳아버리는 면양말이었습니다.

 

찰싹거리는 칼바람에 불그죽죽 볼이 터져도

언 손에 미끄러진 도시락 발을 동동 굴러도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구멍 난 양말 속 엄지발가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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