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수필] 관계

민순혜

joang@hanmail.net | 2021-09-12 17:29:28

서로를 진정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좋은 관계는 계속 지속될 것이다

 

관계(關係)란 무엇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은 관계의 연속인 것 같다. 하나의 세포가 모여서 조직을 형성하듯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거미줄처럼 이어져서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친다면 낙오되는 것 같다. 하다못해 하찮게 여기는 물건조차도 내가 사용하는 순간부터 나와의 관계가 성립된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는 태어나서부터 시작되어 친인척은 물론 이웃이나 친구, 직장 동료 혹은 상사 등으로 넓어진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함은 당연하다.


앤드루 소벨은 그의 공저인 '관계가 결과를 바꾼다'에서 보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번번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대일수록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게 상처를 줄 때 그와의 관계를 끊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두 사람 사이에 적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간격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사실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자신이 상처를 입어도 애써 감추며 관계를 이어 간다 해도 결국에는 작은 상처가 쌓여서 더는 회복이 안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을 볼 때 관대해진다는 건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존중하는 데서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상대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게 되는데 그건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커서가 아닐까 한다. 내 주관적으로 상대를 평가하기 일쑤이니까 말이다. 

 

얼마 전 지인이 동네 문화센터에서 ‘현대 미술사’ 무료 강습이 있다고 알려줬다. 평소 내가 미술사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하는 데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당일 가서 보니 화가 세 명의 각각 요약한 유인물이 있는데, 그녀는 내게 한 명분 한글파일만 보내줬다. 그러니 나는 처음 가서 유인물도 없이 엉거주춤 앉아 있는데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녀에 대한 고마움이 한순간에 원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학습 자료를 주고 싶지 않았다면 아예 강습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지를 말든지, 그 순간 그녀의 못마땅했던 부분들이 머릿속을 메웠다.


수업이 끝나자 지인은 나를 향해 뒤돌아보며 “학습 자료가 없어서 불편했지요?” 묻더니, 강사를 향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처음 오신 분인데 화가 두 명분 유인물 좀 주시겠어요?” 강사는 난처한 듯, 화가 두 명의 자료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지난주 프린트물로 모두 나눠줬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인은 화가 두 명의 유인물은 강습 시간 전에 강사한테 받아서 내게 주려고 했나 보다. 그런데 내가 강습 시간에 늦게 도착해서 미처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이다. 나는 잠시나마 지인을 오해했던 것이 미안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듯 사회생활을 하며 이웃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데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상대에게 특별히 공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면 그건 서로 간에 교감이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둘 사이에 만남이 형성되는 근원 말이다. 

 

 

 

 

 


지난 2018년 4월 2일은 내게 아주 뜻깊은 날이었다. 다름 아닌, 서울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 '하정웅 컬렉션' 장순옥 초대展 ‘엄마, 뭐해?’ 개막식에 내 졸작인 '토우 빚는 여인' 詩 전문이 전시되어서다. 전시회는 그해 6월 29일까지이고 이후에는 수림아트센터에 기증, 영구 소장되며 일부 원형은 광주 '하정웅 미술관'으로 보내져 소장된다고 한다. '토우 빚는 여인' 시는 아주 오래전 장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토우(土偶)를 빚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어 쓴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시를 그녀의 작품 이상으로 잘 간직했나 보다. 장 작가는 초대展 개최를 앞두고 내게 조심히 물었다. 그 시를 작가 도록에 넣어도 되느냐고.


사실 나는 장 작가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심 크게 감동했다. 자신의 작품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타인의 작품 또한 소중하게 다루는 장 작가에게 존경심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무심히 지나친 일들이 상대의 관심으로 새로운 뭔가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설령 상대인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해도 궁극적으로 서로에게 잘된 일이라면 그 일 또한 바람직할 것이다. 서로 바쁘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를 진정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어디에 있건 좋은 관계는 계속 지속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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