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음악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음악애호가인 나로서 본다면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매개체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관객과의 교감은 물론이고 음악으로 인해 친해진 사람들이 그렇다. 지난 5월, LA 방문 중에 ‘라뮤즈 음악회’ 회원 조시형 이학박사(생물학-동물생리 전공)와의 만남도 음악이 아니었다면 조 박사와는 서로 다른 분야에 있어서 전혀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조 박사는 미국 출장 중에 아들 대학원 학위수여식 참석차 아들이 있는 LA 인근 Irvine에 체류 중, 나의 LA 방문소식을 듣고 아들과 같이 LA 한인타운으로 왔다. 그 먼 곳에서 라뮤즈 회원을 만나다니,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하기는 조 박사의 음악 세계도 특별하다. 조 박사는 1978년 8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KT&G R&D 본부에 근무. 첫 직장에 입사해서 33년 5개월을 근무하면서 재직기간 동안 국내에서 판매된 모든 담배와 수출용 담배 신제품개발로 오로지 한 업무만 수행하다가 정년 퇴직을 했다.
▲조시형박사 조 박사는 78년 서울 종로 4가에 소재한 연구소에 근무하다 84년 대덕 연구단지로 연구원 전체가 이전하여 이사한 것 외에 다른 곳은 가본 적이 없다. 직장을 옮긴 적도 근무처를 옮긴 적도 없다 보니 생활 자체가 무미건조하고 그동안 수차례의 구조조정으로 아끼는 후배를 내보내야 했고 상, 하반기 직원 평가 때마다 죄를 짓는 마음이었으니 그 스트레스는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직장 동료의 권유로 색소폰을 배우게 된 것이다. 직장 동료 8명이 의기투합하여 ‘싸르메’ 동호회를 조직, 악기(야마하 YAS-62)와 보면대 악기 스탠드를 구입해서 주 2회 선생님의 지도로 운지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싸르메’ 동호회는 퇴근 후 불굴의 의지로 연습, 입문 6개월이 되는 그해 12월 마침내 색소폰 송년 연주회를 하였다. 애국가부터 크리스마스 캐럴 몇 곡, 그리고 핀란디아 노래를 합주하고 조 박사는 솔로로 선구자를 연주했다. 악기를 배우면서 다소 지루하던 직장 생활에 활기가 생기며 담배도 끊고 술 마시는 횟수와 음주량을 줄였으며, 행사 때에 몇 곡씩 연주하는 것이 보람되게 느껴졌다.
보육시설이나 요양 시설을 찾아가서 연주할 때는 부족한 실력임에도 원생들과 어르신들이 감격해 하며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보면 조 박사 자신도 가슴이 뭉클하고 더 열심히 연습해서 자주 봉사 활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2016년부터는 동호회 명칭도 ‘미리내’ 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활발히 활동했다. 그렇듯 음악은 조 박사한테는 제 2의 인생을 선물한 셈이다.
조 박사는 연구소를 정년퇴직 한 후 부인 민현숙(교육학박사-교육심리 전공)원장이 운영하는 ‘정원 어린이집’과 ‘정원 유치원’ 대표 이사로 재직하며 업무는 주로 구암동 지하철역 인근에 ‘정원 유치원’ 보유 5,000여㎡의 생태학습장(텃밭) 관리와 전체적인 방향 대외업무 그리고 안전관리를 해주고 있다.
조 박사는 생태학습장에 300여 명의 원아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도록 잔디와 나무를 심고, 텃밭에는 갖은 야채와 과일을 심으며 가꾸었다. 농약을 주지 않고 재배하여, 작물들을 수확하여 원아들과 학부모들이 조금씩이나마 나눌 때 맛있어하는 모습을 보면 그 순간 뙤약볕 아래서 물주고 벌레 잡고 김맬 때의 피로는 순식간에 다 잊어버린다고 한다.
낮에는 생태 학습장(텃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저녁에는 색소폰 연습을 하며 삶의 질을 극대화 시키는 조시형 박사. 이는 자연과 더불어 아이들과 교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애호가로 색소폰을 연주하며 성공적인 제2의 인생 행복 스토리를 쓰고 있는 것일 테다. 그렇듯, 나야 물론 음악 애호가로 음악활동은 어쭙잖다 해도 음악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는 좋은 분들과의 만남은 특별한 에너지를 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조시형 박사는 나에게 정신적인 멘토이다. 젊은 시절 연구소에 근무하다가 퇴직 후, 제2의 인생 또한 구슬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사는 조 박사의 진지한 모습을 보며 자칫 느슨해지는 나를 추스르곤 하니까 말이다. 내 주변에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