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溫故創新] ‘클리메놀’이 필요해

/ 2021-01-20 09:01:12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그들의 머리는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몹시 기울어져 있었고 두 눈 중 하나는 깊숙이 푹 꺼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이마 꼭대기에 붙어 있었다.”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1726)> 제3부 ‘하늘을 나는 섬나라 라퓨타’ 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3부는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인 1,2부의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섬에 사는 상류층 사람들의 신체적 특징을 묘사한 대목인데, 살펴보면 이들이 편견과 근시안을 가졌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머리가 좌 또는 우로 기울어졌으니 중용의 생각을 가지기 힘들고 눈이 하나는 움푹 꺼지고 하나는 이마에 높이 붙었으니 두 눈의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그들의 마음은 온통 불안과 걱정 뿐 이고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하는 기우(杞憂)로 가득하다.

 

이 섬은 천연자석의 힘으로 공중에 떠다니는 섬이니 과학기술의 결정체라고 할만 했다. 하지만 해괴한 몰골처럼 이 섬 지도층의 생각은 하나도 실용적이고 쓸 만한 게 없었다. 


학술원에 초대받은 주인공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터무니없는 연구에 경악한다. 오이에서 햇빛을 추출하는 연구, 인분을 다시 원래 음식으로 만드는 실험, 얼음에 열을 가해 화약을 제조하는 연구 등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오히려 몽상적인 연구 실험들이 진행된다. 생김새부터가 이상한 이 나라 상류층은 삐딱한 머리 때문인지 사색에 푹 빠져 있어서 타인들과의 소통, 세상의 필요를 알아채는 일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클리메놀’이라는 ‘때리는’ 하인을 언제나 동반하고 다녔다. 

 

이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말을 할 사람의 입과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의 귀를 바람 주머니로 살짝 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주인들이 소통 능력이 없으므로 그들이 이 일을 해주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

 

들어야 하는 사람이 여럿이면 바쁘게 다니며 그 사람들의 귀를 다 때려주어야 한다. 눈과 귀만 때려 주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길을 걸을 때는 두 눈도 때려서 꼭 경고해야 한다. 


짝짝이인 눈을 그나마 감고서 사색에 빠지면 추락이나 충돌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생각만 하면서 편견과 사색에 매몰된 상류층은 질병에 걸리게 된다.

 

“장황하게 떠들어대고 광적으로 흥분하고 사악한 짓을 일삼는 기질 때문에” 정치에 속한 사람들, 상원과 하원과 대도시 의회원들은 질병을 달고 산다. 


경련, 현기증, 정신착란, 종양, 게걸스런 식욕 등이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이 섬나라 라퓨타의 발달한 과학지식과 우아한 예술세계, 고상하고 품위 있는 상류층을 좋아했으나 그들의 어이없는 실체를 알아채고는 곧 싫증을 느끼고 섬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과학과 예술이 고도로 발달한 이 나라의 문제는 무엇인가? 


작가는 풍자와 비평으로 자신이 살던 18세기 영국사회, 특히 왕가와 귀족층을 낱낱이 고발했다. 

 

그런데 이러한 행태들이 어쩐지 낯익다. 바로 삐딱한 머리와 초점 안 맞는 눈으로 사색에 푹 빠져 지낸 조선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들이 뽐냈던 ‘과학’은 주자의 학문이었다. 

 

일찍이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들은 사람을 살리고 위하는[홍익인간] 진리이면 어떤 것도 받아들여 발전시킬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에 이르기까지 유교, 불교, 도교가 솥[鼎]의 세 발처럼 균형을 이루고 지냈다.

 

정치와 종교와 마음수양에 따로 또는 같이 작용했던 이 세 가지 학문이자 이념은 한국인의 균형감 있는 발전과 함께 해왔다. 

 

그러다가 조선에 접어들면서 주자의 학문으로 기반을 잡는다. 주자의 학문은 신유학이라고도 불리는데 근본유학인 공자의 학문과는 사뭇 다르다. 이 주자학이 조선에 장착되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머리가 삐딱해지고 두 눈의 초점이 안맞게 되었다.


현대 한국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정치인은 건강한가? 

 

그들의 귀와 눈은 열려있는가? 그들의 입은 해야 할 때 할 말을 하는가? 

 

그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클리메놀’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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