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로컬타임즈] 조선 후기, 신분과 성별의 장벽을 넘어 조선 천하를 놀라게 한 한 여인이 있었다. 이름은 바우덕이. 조선시대 유일무이한 여성 꼭두쇠(남사당패의 우두머리)였던 그녀는 뛰어난 재능과 신명으로 궁궐마저 사로잡았고, 당시 백성들의 억눌린 한과 풍자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녀가 태어난 경기 안성은 조선시대 남사당의 발상지이자, 전국 3대 장터로 꼽히던 곳이다. 이 지역의 풍류와 흥, 그리고 장터 문화가 고스란히 스며든 곳에서 ‘안성맞춤 바우덕이 축제’가 다시 시민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안성시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대규모 축제를 열었다. 올해로 24회를 맞은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는 조선의 신명과 공동체의 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축제로 자리 잡았다.
남사당놀이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자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다. 줄타기, 덧뵈기(탈놀이), 풍물,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덜미(꼭두각시극) 등 여섯 마당으로 구성된 복합 예술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특히 ‘남사당 쌍줄타기’와 ‘풍물한마당’이 관람객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줄 위에서 펼쳐지는 고난도 곡예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고, 땅에서는 풍물패의 꽹과리와 장구가 흥을 끌어올렸다.
축제 첫날에는 바우덕이 추모제가 열려, 남사당의 정신을 기리는 의식으로 막을 열었다. 이어 길놀이 퍼레이드가 안성 구도심 일대를 가득 메우며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관을 연출했다.
한복 차림의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뛰어다니고, 노년의 어르신들은 “이게 진짜 우리 흥이지”라며 웃음을 지었다. 한때 사라질 뻔했던 전통이 세대를 넘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바우덕이 축제는 단순한 전통행사에 머물지 않는다. 안성시가 추진하는 ‘문화·경제 융합형 지역축제 모델’의 대표 사례다.
안성시는 이번 축제 기간 동안 지역 농축산물 전시·판매장을 운영하며, 쌀·한우·인삼·배·포도 등 5대 대표 특산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특히 지역 농가가 직접 운영하는 판매 부스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축제 기간 동안의 경제유발 효과는 약 15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시는 추산했다.
올해 축제의 특징 중 하나는 한·중·일 3국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이다. ‘빛의 다리’로 연결된 수변공원에서는 세 나라를 상징하는 색채와 전통이 조명 아래에서 어우러졌다.
일본의 와다이코(일본 북 공연), 중국의 사자춤, 한국의 풍물이 교차하며 관람객들은 동아시아의 공통된 신명 문화를 체험했다.
이어 조선의 민중 예술을 부활시킨 남사당놀이의 핵심에는 ‘풍자’와 ‘해학’이 있다. 바우덕이는 권력과 위선을 향한 날카로운 풍자를 무대 위에서 풀어냈고, 그것이 백성의 해방감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바우덕이 축제 역시 단순한 전통재현이 아니라, 시민과 공동체가 함께 웃고 울며 ‘공감의 장’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상업화 일변도의 행사로 흐를 경우, 바우덕이의 정신이 희석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안성맞춤’이란 말은 본래 조선시대 안성 장터에서 유래했다. 물건의 품질이 좋아 어디에나 딱 맞는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이 말은 오늘날까지 ‘완벽함’의 대명사로 쓰인다. 그 뿌리에는 남사당의 신명과 장터의 활기가 있었고, 그 정신은 바우덕이 축제를 통해 다시 되살아났다.
올해 축제에는 자원봉사자 800여 명이 참여했다. 청소년 문화해설사, 주민예술단, 시니어 도슨트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며 ‘시민 중심형 축제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시민 퍼레이드’ 구간에서는 70대 어르신부터 초등학생까지 한 무대에서 어깨를 맞댔다. 안성 주민 김정화(62) 씨는 “옛날 남사당패가 그랬듯, 이번 축제도 우리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안성 바우덕이 축제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조선의 신명이 세계로 향하는 통로이자,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세계무대로 확장하는 실험장이다.
전통과 현대, 예술과 경제, 지역과 세계가 한데 어우러지는 ‘신명의 축제’. 그 중심에 여전히 바우덕이가 있다. 시대를 넘어 다시 무대에 선 조선의 첫 여성 꼭두쇠는, 오늘날 안성의 시민들과 함께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세계로컬타임즈 / 이숙영 기자 pin827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