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편집부 / 2017-09-25 10:04:21
박만재 전 CBN기독교TV 회장 / 자유총연맹 종교특별위원회 상임고문
▲ 박만재 전 CBN기독교TV 회장 / 자유총연맹 종교특별위원회 상임고문.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진리와 영성에 목말라하고 있다. 종교는 진리를 찾아가는 ‘통로’이며 세상의 바른 길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한다.

종교는 사회를 위해 있는 것이지, 사회가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가 스스로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껍질을 두껍게 하여 벗지 않고 있다. 종교가 다르다고 교파가 다르다고 타 종교의 경전을 읽어보지도 않고 비난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며 우물 안의 개구리다. ‘논어’를 유교경전이라고 읽어보지 않는다면 스스로 무식한 사람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를 이해함으로써 내 종교를 알 수 있다. 삶의 가치를 종교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가 권위주의, 집단 이기주의, 물량주의에 빠져서 종교 이탈 현상이 심화하고 종교의 존재 목적이 없어지는 것이다.

마음의 평화, 행복을 추구하는 곳 중 하나가 교회다. 요즘 교계의 끊이지 않은 부정부패와 배금주의로 인하여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에 실망하고 떠나는 사람 중에 ‘공갈’ 신앙자가 많은 것은 목사와 교회 보고 나가다가 세상보다 못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묵직한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내가 찾던 믿음과 신앙의 본질에 대해여 고민하게 되면서 ‘선데이 크리스챤’이 되고 있다. 신앙은 인생이라는 대해를 헤엄칠 때 의지할 수 있도록 ‘밧줄’이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보다 많이’, ‘보다 크게’. 이것은 ‘하류가치’다. ‘성공한 실패’다.

요즘 사람들은 인생의 문제를 굳이 종교에서 찾으려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전적으로 성직자의 책임이며 문제다. 목사는 교회의 지도자다. 설교는 교양강좌나 강연이 아니다. 어디서 누구나 들어도 가슴에 와 닿고 깨달을 수 있는 감동적 설교여야 한다. ‘소피스트’와 목사의 설교는 구분돼야 한다. 감동적이고 순수해야 거기에 은혜가 있고 은총이 있다. 교회는 빠르게 변화는 사회 속에서 언제난 올바른 가치관과 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삶의 공동체’여야 한다.

종교인들은 우리끼리의 집단의식이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오해의 장막을 걷어내고 인식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오직 그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적이며 우리의 사명이다.

신의 섭리를 거부하고 신의 영역을 넘보는 행위야 말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무기개가 아름다운 것은 여러 가지 색이 공존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더 크고 더 많이 보다 성숙한 교회, 선한 교회, 선한 목자가 사랑이고 평화다.

하나님은 언제나 초월한 곳에 스스로 계신다. 고요히 앉아 내면을 응시하면 환한 빛이 보인다. 신은 우리게에 자유의지를 주었다.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고통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가 있다. 자유는 종교의 자유에서 나왔고 그 자유는 사상의 자유를 낳았고, 표현의 자유를 낳았다. 자유인은 상대의 믿음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다양한 이념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오늘도 어둠을 밀어내고 솟아오르는 태양은 나에게 소망을 열어주는 새날임을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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