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택 칼럼] 시대정신 담는 헌법

황종택 주필 / 2021-06-24 10:12:14

▲ 황종택 주필.

중국 전국시대 대표적 법가 ‘한비자’는 말했다. “악이 없어지고 선이 생기는 것은 법을 잘 만듦에 따르고, 법을 공정하고 분명하게 실행하면 국가사업이 성공한다.(惡滅善生隨立法 分明正)”

법의 중요성에 대한 명쾌한 논리이자, 법이 인간 삶의 반려자라임을 알게 한다. 그렇다. 사회 질서와 국민 삶의 문제가 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회의장이 띄운 분권형 개헌


요즘 국가 통치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 총체인 헌법을 바꾸는 일, 곧 ‘개헌(改憲)’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취임 1년을 맞아 국민통합과 대전환 시대에 맞는 분권형 헌법이 필요하다며 여야 신임 지도부에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사회적 갈등을 막고 사회적 기본권, 지방분권, 기후변화 대응 등 새 시대정신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큰 틀에서 개헌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대의 요구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독주와 시대변화를 담지 못하고 있는 등 폐단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현제왕적 행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국민에게 선출권만 부여하고 있고 심판권은 보장하고 있지 못한 탓으로 책임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지 오래다. 여러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특수한 상황 하에 타협의 산물이었던 5년 단임제가 이제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아 바꿔야 한다는 것이 여론의 대세이다.


단임에서 연임으로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가 다르기 때문에 불규칙하게 대선, 총선이 치러지는 ‘이격 현상’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개헌이 필요하다. 임기를 같게 만든 뒤 대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고 총선거를 그 사이에 배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해야 잦은 선거로 인한 고비용 정치와 정치적 불안정을 막고 적절한 수준으로 권력을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정치개혁을 논의하다 보면 결국 개헌 문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개헌이 거론된다. 권력구조와 선거구제도, 정당제도 등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행 헌법은 산업화 시절 국민소득 3000불 시대에 만들어져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사회의 변화를 담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34년이 지났음에도 국민통합을 제도적으로 풀지 못하는 이유다. ‘정권 견제’를 위해 만들어진 헌법 아래에서 대결의 정치로 30여년을 보내는 동안 한국은 저성장·양극화, 저출산·고령화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먼저 이끄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뒷받침하는 법적 뒷받침도 긴요하다. 내년 3월 20대 대선을 앞두고 더 이상 개헌 논의를 지체해선 안 될 당위가 있다. 정치권은 개헌의 필요성을 인식해 공론화에 나서길 바란다.


헌법은 국가의 통치 조직과 통치 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한 국가 구조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개념은 역사적 발전과정과 사회적 접근방법에 따라 다르게 분석, 정의되는 다의적 개념으로 변천돼 왔기에 이를 일의적으로 정의하긴 어렵다.


시기와 내용 등 ‘여야 합의’ 필수

하지만 일반적으로 본다면 헌법이란 국가 기본법으로서 국가의 구성·조직·작용과 기본권 보장에 관한 기본적 원칙을 규정한 근본법이며 최고의 수권법이라고 할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에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지 않고 권력분립이 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본권 보장과 권력분립은 헌법의 불가결한 내용이다.


세계화·지방화시대에 걸맞게 지방분권적 내용도 헌법에 담아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방적 관계가 아닌 협치를 통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게 선결요건이다. 물론 개헌의 시기와 내용 등에 관한 국민여론 수렴과 ‘여야 합의’가 필수적이다. 지난날 어두운 경험을 감안할 때 국민들은 개헌하면 우려·위험·경계를 떠올린다. 그만큼 개헌 문제는 나라 전체를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치게 할 핵폭탄과 같은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살리기에 매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긴 안목에서 정치안정을 통해 국리민복을 꾀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 ‘한비자’는 또다시 이렇게 힘주어 말했잖은가. “현명한 군주는 법을 잘 만들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만 어리석은 군주는 꾀를 부려 험악한 세상에서 맴돌게 한다.(明君設法置安全 亂主謀能旋險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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