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이 세상을 향해 외친 “근로기준법 준수”

최영주 / 2019-09-16 13:38:47
대구시민들, '전태일 기념관' 건립 추진 모금행사 개최
▲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창립기념 후원의 날 홍보물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제공)

[세계로컬타임즈 최영주 기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한 남자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이렇게 외쳤다. 

전태일! 그가 분신 당시 세상을 향해 부르짖은 말이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점에서 재단보조로 취직하게 된다.

이후 재단사로 일하면서 그는 재단보조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박봉, 질병(폐렴 등)으로 시달리는 모습과 사람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며 노동 현실의 타파와 개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근로기준법' 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법전은 너무나 어려웠다.

재단사들의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해 회원들과 노동법을 공부하며 설문조사를 실시, 시청과 노동청에 노동환경 개선과 권리를 진정했으나 좌절됐다.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기로 한 1970년 11월 13일, 집회가 경찰에 막히자 근로기준법이 실린 법전을 들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했다.


전태일, 그의 나이 22세였다.


"엄마, 내가 못다 이룬 소원들을 엄마가 제 대신 이루어 주세요."
"엄마는 이제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뚫어 놓은 작은 바늘구멍을 자꾸 넓혀서 그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친구들아.절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줘라." 

어머니와 친구에게 남긴 유언이다.


전태일 열사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 강당자리)를 다니던 시절의 고향집이 현재 대구 남산동에 남아 있다.


이에 뜻있는 대구시민들이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을 창립하고 그가 살던 남산동 집을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 6월에 잔금을 치르고 생가를 넘겨받아 원형을 보존하고 2020년까지 ‘대구 전태일 기념관’을 건립 목표로 하고 시민모금운동을 시작한다.


내년 2020년은 전태일 열사 서거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전태일의 친구 모임은 전태일과 전태일 평전 저자 고 조영래 변호사 두 사람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지난 4월 출범했다.


1970년대, 독재의 횡포와 권력과 자본을 가진 기득권의 이기주의와 변덕에 일개 서민들이 항거와 저항이란 것을 생각조차 못하던 시대, 그때 자신을 태워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사는 시대를 앞당긴 이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 생가를 기념관으로 만들어 전태일 열사가 외치고 추구했던 ‘진정 인간다운 삶,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사색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한편, 전태일기념관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권변호사였던 대구 출신 조영래 변호사 기념공간도 함께 마련된다. 

▲ 대구시 남산동에 남아있는 전태일 열사가 학창시절 살던 집이다.(사진=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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