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수필] LA에서 예술가 3人의 유쾌한 수다, 그후

민순혜 / 2021-09-01 14:55:28
LA에서 이가인 시인, 염선행 서양화가와의 특별한 만남
▲ LA 게티빌라(Getty Villa)박물관에서 (왼쪽 염선행, 이가인, 민순혜)

 

[세계로컬타임즈 민순혜 기자]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 해외여행은 아예 생각할 수가 없다 보니 지난 사진을 보면서 그때를 음미해 본다. 2년 전 나는 미국 서부 2박 3일 여행을 마친 후, 이튿날 LA에 거주하는 이가인 시인(LA 보나기획 이혜자 대표)을 만났다.


때마침 LA 딸네를 방문 중인 염선행 서양화가도 합류, 머나먼 이국땅에서 수필가인 나를 포함, 순수 한국인 예술가 3人의 유쾌한 수다가 시작됐다. 세 명은 늘 만났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가 오갔다. 한인 타운 '북창 순두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었던 건 예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점심 후에는 이 시인의 안내로 LA 게티빌라(Getty Villa) 박물관을 다녀왔는데, 내게는 광활하고 거대했던 미국 서부 관광보다도 그날의 인정 넘치는 단란했던 여정이 더욱 감명 깊고 즐거웠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이 시인과 염 작가는 각자 위치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 귀국행 짐을 싸고 있는데 밤늦게 이 시인이 다시 호텔로 찾아왔다. 이튿날 동요대회에 나가는 학생 레슨을 마치고 부랴부랴 온 것이란다. 내가 이튿날 새벽 2시 30분 호텔을 출발, LAX 공항에 가니까 나를 배려하기 위한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뭐라도 말하려는데 이 시인은 조식 겸 저녁 식사를 하자며 ‘한밭 설렁탕’으로 서둘러 갔다.


그러나 주차요원이 밥이 떨어졌다며 주차장 진입하는 데 그만 퇴짜를 맞고 말았다. 하지만 이 시인은 “내일 새벽에 가는데 어떻게 밥을 굶고 갈 수가 있느냐”고 차를 주차한 후 잠시 기다리라고 손짓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돌아와서 "설렁탕 한 그릇 남았다는데 먹고 가요."라며 앞서서 걸었다.


자리에 앉자 직원은 조금도 귀찮은 내색 없이 친절하게 설렁탕 한 그릇과 빈 그릇 두 개를 갖다 놓는데, 이 시인의 그곳에서의 성실하고 진솔하게 삶을 살아온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날 이 시인과 나눠 먹은 반 그릇의 설렁탕은 사실 평생을 먹고도 남을 분량이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 시인(LA보나기획 이혜자 대표)은 “LA 코행가 공립 초등학교” 음악 교사로 9년째 근무한다. 다민족 어린이들로 한류열풍을 타고 한국어가 크게 인기를 얻고 있기에 ‘동요로 배우는 한글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인 음악 시간은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 LA 게티빌라(Getty Villa)박물관에서 (왼쪽 이가인, 민순혜)


또한 이 시인은 가곡 작사가로도 활동해서 LA 보나기획 2015년 10월 제1회 작곡가 임긍수 초청 음악회를 시작, 매년 한국가곡의 밤을 개최했다. 2019년 한국가곡의 밤은 소프라노 강혜정 교수를 초청, ‘LA 한국문화원’에서 공연했고, 2020년2월1일 故 권길상 선생 추모음악회는 “코행가초등학교”에서 주최해 성황리에 마쳤다.


나는 지난 LA 여행 사진을 보다 보니 불현듯 이 시인 근황이 궁금했다. 이 시인은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여느 때처럼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팬데믹 기간에는 줌으로 동요 수업을 하며 2020년 12월 4일 미주중앙일보와 보나기획이 공동 주최한 남가주 어린이 동요음악회를 온라인 음악회로 유튜브에 생중계했다.


이번 학기부터는 전면 대면 수업을 하며, 2021년 11월 중 이가인 작시 음악회와 12월 제4회 남가주 어린이 동요음악회가 있고, 2022년 4월 29일 LA 4.29폭동 30주년 기념음악회는 흑인 커뮤니티합창단과 LA 거주 성악가들이 개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순간 이 시인이 자랑스러웠다.


염선행 서양화가는 딸이 사는 LA에 팬데믹 19 이전에는 해마다 방문했다. 그 당시 딸 김보영은 미국 서부 최고의 공대인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이하 칼텍) 대학원생이었다. 딸 김보영은 칼텍 대학 재학 중 남편을 만나 캠퍼스 커플로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 그 당시 학생 부부로 2세 딸을 키우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염 작가는 그런 딸과 사위가 무척 대견하고 뿌듯하다며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그 딸이 지금은 보스턴 MIT에서 남편과 함께 박사후과정으로 있으며, 2020년에 라이징스타(EECS/Electrical Engineering and Computer Science)상을 수상하고 올해는 교수지원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하니 더없이 자랑스럽다. 아들은 연세대학 졸업, 미시건대 공학박사 취득 후 칼텍에서 박사후과정으로 남매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염 작가는 아들과 딸이 도미(渡美)한 후, 남편과 둘이 살면서 오직 그림에 전념했다. 2년 전 LA 딸네 집을 방문했을 때도 갤러리를 자주 찾았다. 특히 노튼사이먼뮤지엄(norton simon museum)과 게티뮤지엄에 자신의 그림에 영감을 주는 작품들이 많다며,


그곳에서 느끼는 것들과 그녀 자신이 하나가 될 때, 그 형용할 수 없는 숱한 감정을 고스란히 가져와 작업실 캠퍼스에 오롯이 담아내곤 한단다. 무엇보다도 LA에는 염 작가 모교인 경기여고와 이화여대의 동문이 많이 살고 있어서 친구들과 선후배의 만남을 갤러리에서 만나고픈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 LA 게티빌라(Getty Villa) 박물관에서(왼쪽 염선행, 민순혜)


그러잖아도 LA에서 우리 예술가 3인이 게티빌라를 다녀오면서 LA ‘작가의 집’ 갤러리를 방문했다. 염 작가는 갤러리 김문희 이사장과 면담을 통해 ‘바람이 보인다’라는 주제로 2018년 5월 LA 개인전 기획을 의논했었다. 염 작가의 그림 소재는 ‘기억 조각모음’ 그리기와 보이지 않아도 작가 자신의 눈에 선한 ‘바람소리’ 그리기였다.


염 작가의 붓과 나이프와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우연과 의도로 그려지는 기억 조각들과 바람이야기들은 2018년 바람이 머문숲(꽃골 갤러리), 2019년 LA 초대기획전, 2020년 바람난 도시(바람흔적미술관)로 표현됐다.


그러나 염 작가도 팬데믹 시대에 들어서며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림의 소재는 도시이야기로 바뀌었다. 코로나 19를 이겨내고 반짝반짝 빛나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도시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밝은 색상의 긍정 이미지를 그린다.


이제 우리 예술가 3人은 각자의 자리에서 예전 사진을 들춰보면서 미래의 우리를 그려볼 것이다. 완성된 우리를 말이다.

 
* 칼텍은 노벨상 수상자만 31명을 배출한 이공계열 중심 특성화대학이다.([LA중앙일보] 2011/10/11 미주판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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