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진의 ‘예술가 그게 뭔데’⑭] 고새 작가 “유리와의 만남 ‘운명’”

김영식 / 2023-03-28 15:15:44
자연스러운 흐름 추구하는 ‘유리 노동자’
▲ 고새 작가.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예술은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품전시가 개최되고 있으며, 수많은 작업자가 자신의 작품을 탄생 시키기 위해 내적·외적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관람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작가의 작업 결과물인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갤러리에서 작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완벽한 소통이 아닌 순간의 감성 소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변성진의 <예술가, 그게 뭔데?>는 이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갈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예술이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등 예술가 이야기를 군더더기없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구성했다.

관련 릴레이 인터뷰 중 열네 번째로, 이번에는 보다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을 기반으로 ‘유리’ 영역을 예술적 관점으로 접근, 자신만의 독창적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고새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새 작가.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고새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유리 노동자’ 이효정입니다. 고새는 제 본명 새벽 효(曉) 고요할 정(靜), 즉 고요한 새벽에서 따온 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유리 노동자라고 칭하는 이유는 과거도 결과도 아닌 지금의 행위를 이야기하니까요. 저는 유리를 만지고 있는 저 자신이 좋고 그래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산업디자인 전공인 제가 유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창한 입문 계기 또는 특별한 입문 계기라고 할 것이 없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이미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항상 ‘어쩌다 보니 이러고 있네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유리공예를 하기 전에는 누드 크로키 모델을 했었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가장 혼자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운 직업이었습니다. 발가벗은 채 침잠하기도 하고 파티를 하듯이 상황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내 몸과 외부 공간의 경계인 피부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피부가 물체에 닿았을 때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조소과 학생의 흙이 내 피부를 따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유리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유리와 피부의 접합 면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운명적으로 정해진 길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Q: 작업 또는 활동 사항이 궁금합니다.

A: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100가지의 보는 방법’입니다. 안경테는 모두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렌즈는 개개인의 시력에 맞게 제작됩니다. 또한 잘 보이게 만드는 것이 주목적인 렌즈는 절대 눈앞을 불투명하게 가리면 안 됩니다. 이런 지점에서 중요한 요소를 찾았으며, 그것을 시각적인 형태의 안경테로 조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신체와 유리가 닿는 지점을 생각하며 꾸준히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Q: 지금 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최근 동료에게도 작업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저는 그때 반사적으로 목적을 정하는 순간 거기에 영향을 받을 것이고 작업의 방향성은 일시적으로 좁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확실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질문도 저에게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인터뷰에 적절한 작업의 의미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 순간 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무아지경으로 명상하기 위해 작업이 존재하는 순간도 있고 자기 회피를 위해 존재하는 순간도 있고 중심을 위해 존재하는 순간도 있고 사회적인 활동을 위해 존재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작업은 물을 대하듯 언제든지 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작업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작업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과 저는 비슷한 속도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에게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방향과 의미를 굳이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야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지점으로 더욱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추구하는 작업 방향(스타일)이 있다면.

A: 저는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작업 중에서 조금 결이 다른 혹 같은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러우면 그대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 튀어나온 혹을 관대하게, 그리고 먼발치에서 바라봅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일종의 작업 지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지도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해 확장해 나가기도 하고 가려놓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작업 지도가 대략 삶의 지도와 유사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새 작가.

Q: 작업의 영감은 주로 어떻게 얻나요.

A: 일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 듯합니다. 공부하고 싶다면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싶으면 밥을 먹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으면 만나서 필요한 것을 합니다. 그렇게 일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제 안에서 패턴, 재조합된 것들이 구토하듯 나옵니다. 그럴 때 스케치를 하거나 글을 써 내려갑니다. 만약 이미지화나 언어화가 되지 않으면 ‘아, 아직 토가 덜 하고 싶나 보네.’ 하고 멈춥니다. 그렇게 방치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구토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 후 나온 것들을 씨앗 돌보듯이 키우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 내면의 기능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잠하더라도 믿어줘야 합니다.

Q: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명언 또는 글귀가 있다면.

A: 친한 언니가 ‘나를 위한다는 것은 별것이 아니야. 몸이 차다면 목욕을 자주 하고, 뻐근하다면 요가를 하고 그러면 돼’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매 순간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버거워하던 제게 꼭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제가 불안정했던 것은 인정받지 못해서, 멋있지 않아서, 증명할 것이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장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창작은 그 다음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로는 몸과 마음을 위한 적절한 균형을 위한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겠다 결심했습니다.

Q: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A: 저는 예술이란 번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맥락과 의미에 맞게 맛깔스럽게 의역해서 그 뜻을 전달하는 고도의 번역이요.

Q: 작업자에게 철학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일종의 뼈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태아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육체적인 뼈가 아니기 때문에 산통과 세포분열, 태아의 고통 그것들을 자발적으로 견뎌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푹 묵혀지고 그 안에서 또 재조합되고 틀린 것은 절단해 내는 과정을 통해 나만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다만 뼈대가 주는 압박감 또한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나아감은 파괴에서 오기도 하니까요.

Q: ‘독창적인’이라는 것에 관한 생각은.

A: 개인적인 날카로움으로 집단을 관통하는 것이 독창적인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집단의 것을 모아 놓은 것은 보편적일 뿐이지 날카로운 지점은 미약하다고 느껴집니다. 독창적인 것은 날카롭게 관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것에 치우친 것은 날카롭지만 규모가 작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어렵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창작물은 죽고 말죠. 두 지점이 가진 장점들을 적절하게 조합해야 합니다.

Q: 다른 작가 혹은 다른 분야와의 협업에 관한 생각.

A: 협업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은 영상작업 분야와 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유리의 입체적이고 유동적인 면을 영상으로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Q: 본업 병행작가와 전업 작가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에 대한 나의 견해.

A: 저는 유리노동자이자 공방을 운영하며 유리공예 수업을 하는 선생님입니다. 처음 유리를 접했을 때는 취미로 시작했고 그때는 대학생이라서 선생님이 계시는 공방에 가서 작업을 했었습니다. 졸업하고 진지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 작업실을 차리고 수강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작업하는 자아와 가르치는 자아로 나눈 것이 익숙지 않을 때는 더욱 두 역할을 구분 지어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된 것은 두 역할은 서로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혼자 작업했다면 절대로 알지 못할 제 작업 자아의 모습을 수강생을 가르치며 깨닫게 되고 수강생분들이 유리를 만지는 모양새를 보며 작업 자아가 반성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이는 공간이 될 수도 있었던 곳을 일상적인 이야기로 채우기도 하고요. 그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마저 남은 개인 작업을 합니다.

제가 두 가지의 역할을 선택했고 결국 그것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에서 파생된 다른 것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중심이 돼야 하는 가지가 내가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저는 안전이 보장된 공간에서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는 사람이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는 경직됩니다. (유리공예를 할 때는 당연하게 자연스럽습니다) 경직되면 유연하게 사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무조건 제 공간 안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억지스럽지 않은 영역이 어디인지 파악하고 그 안에서 놀아보세요. 모든 것을 작업하듯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게 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저는 계속해서 공부할 생각입니다. 어쩔 수 없이 변화가 일어나는 환경에 저를 밀어 넣고 싶습니다. 일종의 꾸준한 도전인 셈입니다.

Q: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A: 저는 작업에서 저라는 사람의 존재도 함께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편안했는지,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얼마나 충만했는지가 보이기를 바랍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사람들이 제가 만든 작품들을 보면 어림짐작으로라도 저를 떠올리게 됐으면 합니다.

ⓒ고새 작가.

[인터뷰: 변성진 작가/ 자료제공: 고새 작가/ 편집: 김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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