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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영 숭례문학당 강사 |
며칠 전 시흥에 사는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받았다. ‘인덕션이 고장나서 AS 기사가 오기로 했으니 집에 좀 가달라’는 부탁이었다. 프리랜서는 일하는 데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사람임에도 가족들은 내가 시간이 많아 빈둥대는 줄 아는 듯하다. 인덕션을 수리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있는데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김봄 작가의 에세이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로, 제목과 표지그림이 재미있어서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책은 보수 성향의 70대 어머니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며 글을 쓰는 40대 딸 김봄 작가의 일상을 담았다. 작가는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안에서 부딪치는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어머니와 딸의 대화로 유쾌하게 보여준다. 좌파를 극도로 싫어하는 어머니는 ‘가짜뉴스 좀 그만 보라’는 딸의 핀잔에, 좌파가 진실을 다 가려놓았다면서 오히려 딸을 나무란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애잔하다. 70대 모친은 가난한 삶을 버티면서 가족을 위해 살아온 이 시대의 어머니이자,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고픈 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막내 동생은 “그 책 보면 꼭 엄마랑 언니가 얘기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라고 밀했다. 내 엄마는 베이비부머 세대로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평범하게 교육 받을 시기에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미싱을 배웠다. 20대 초반에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지만 여전히 가난해서 딸 셋을 키우는 동안 삶은 평탄치 않았다. 엄마는 박음질할 일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양손엔 나와 둘째를, 등에는 막내를 업고 힘겹게 버스에 올랐다. 어린 딸들을 집에 두고 나갈 수 없었던 엄마는 그렇게 생활비를 벌었다.
가난한 사람, 아이 엄마, 일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던 시절, 엄마가 감내해야 하는 정신적 피로와 육체적인 고통은 컸다. 엄마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동생이랑 싸우거나 잘못이라도 하면 걸쭉한 욕 세례를 받았고 매질을 당했다. 평화주의자인 아버지 등 뒤로 숨어도 엄마는 기어이 끌고 와서 때렸다. 그래서일까. 일감 받으러 엄마와 버스를 탈 때는 ‘혹시 나를 버리고 가진 않을까’ 엄마 뒤통수만 쳐다봤고, 밥 축낸다고 혼날까봐 엄마 몰래 밥 한 그릇 더 퍼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 덕분에 굶주리지 않았고 부족함 없이 학교를 다녔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를 방황할 때 엄마는 심리적·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어 했다. 아버지와 딸 둘은 취업 전이었고, 막내는 아직 어렸다. 엄마는 혼자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집 대출금과 이자까지 떠안았다. 그 와중에 내가 어학연수를 갔고, 귀농하겠다는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엄마는 살림을 다 접고 전라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자리를 잡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받은 모멸과 상처는 지금도 엄마 가슴 깊이 자리해 있다. 나는 엄마가 집에서 빈둥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바깥 일이 끝나면 밀린 집안일을 했고, 가족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온종일 바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번역가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툴툴댔다. 불안한 생활을 자처하며 돈에 쪼들리는 큰딸의 모습이 미덥지 못했을 것이다. 공부한다더니 책만 읽고 일은 한다는데 늘 궁색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육체적 노동으로 돈을 벌었던 엄마가 보기엔 내 생활이 매일 놀고먹는 백수와 다를 바 없었다. 모처럼 밖에 나가 일하고 있다고 하면 ‘얼마짜리’ 일이냐고 물었다. 그런 엄마가 그렇게 속물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자기 경험이 전부였던 엄마는 나와 자주 부딪쳤고 끝내는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런 엄마에게 난 늘 상처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간을 통과하면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삶의 갈래들을 경험하고 그렇게 배운 것들로 내 삶을 해석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접한 후로 여성으로서 엄마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욕설과 매질 뒤에는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의 고단한 삶이, 감정적이고 비수를 꽂는 말들 뒤에는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온 가난한 소시민의 삶이 있었다. 여전히 그때 엄마의 말과 행동은 밉지만, 당신 또한 그 시간을 상처받으며 감내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에게 어머니란 그렇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몸 안에 끓어넘치는 재능이 있었고, 그것을 삶에서 어떤 식으로든 실현시키고자 했다. 아마 그것은 어머니만의 특성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응당 지향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고, 적어도 이 세상 절반쯤의 사람이 살아야만 하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단지 여성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 '자연스러운 추구'로부터 박탈당하는 일을 당연히 겪어야 했다."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엄마가 박탈당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엄마에게 주어졌을 수많은 기회와 재능을 박탈한 원인 제공에 나도 많은 지분이 있다. 엄마는 젊었을 적에 무엇을 추구했을까? 추구했지만 포기한 것은 무엇일까? 그때 심정은 어땠을까? 내가 나이가 들어가며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엄마의 삶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마흔. 휴대폰 안 사준다고 집나간 철없는 고등학생 딸에게 공중전화 카드를 건네던 내 기억 속 엄마도 마흔이었다. 돈이 없던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공중전화 카드였다.
지금 내 나이에 엄마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