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칼럼] 가을은 오는데

김병호 / 2021-08-29 21:19:42
▲ 영주 부석사 입구 만추 모습(사진=김병호 DB)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산으로 바다로 떠난 피서객들이 오늘은 소백산 기슭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 같다.

삼삼오오 줄지어 산행을 즐기던 마니아들도 코로나19 탓인지 외톨이로 이리저리 흩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행을 즐긴다.
 

산은 늘 푸르르며 삶에 찌든 서민들 앞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풍요로움과 단아한 풍경, 천년고찰 영주 부석사는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다. 고즈넉한 산사의 향기는 온몸의 감각을 깨우기 시작한다.
 

중학교 시절, 작고하신 어머님이 양은도시락에 꾹꾹 눌러 싸준 점심밥을 보자기에 돌돌 감아 어깨에 질끈 동여매고 부석사를 찾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도 어언 반세기가 지나고 인생 황혼기에 마지막 걸음을 재촉하는 듯하다. 무량수전 앞뜰에서 멀리 남녘을 바라보니 아스라이 보이는 올막졸막한 산들, 추색이 완연하다.
 

구월의 마지막 날이 오면 짙푸른 나뭇잎들도 추풍이 스며들며 가지를 흔들겠지. 우리가 가는 이 길도 추풍이 들면 저 푸르던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일소 현상(日燒現象)이 오리라.
 

영원한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할퀴고 뜯고 아귀다툼이 연일 꼬리를 문다. 얼마 가지 않아 자신들도 갈색으로 변해 떨어질 텐데, 한 치 앞을 못 보고 못된 입을 놀린다.
 

가을이 오면 그리운 것은 봄이 아니겠나? 사계절 이렇게 돌아가는데 인생의 봄은 돌아가면 올 줄 모른다.
 

봄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 아직은 겨울이지 싶을 때 봄이고 / 아직은 봄이겠지 싶을 때 여름인 봄 / 너무나 힘들 게 더디게 왔다가 / 너무나 빠르게 허망하게 가버리는 봄 / 우리의 인생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나태주 봄)
 

인생도 종착역이 있지. 그 종착역 부근에 서성이며 오늘을 가는 가련한 인생들은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무지개를 그리며 마치 백 년을 더 갈 것처럼 객기를 부린다.
 

내려놓았던 배낭을 챙겨 매고 부석사 무량수전을 빠져나온다. 작년 가을엔 길옆 단풍잎이 유난히 노랗더니 올해는 때가 조금 이르다.
 

누가 봐도 돌아가는 길은 쓸쓸하다. 허전한 가슴 꽁꽁 묶고 작고하신 어머님이 챙겨 주시던 도시락 먹을 때 힘을 꺼내 보지만 아서라. 이제는 그 시절 육신이 아닌가 보다.
 

뒷다리가 당기면서 조금씩 통증이 온다. 가을은 오는데 육신의 가을은 이미 와있고, 내년에도 무탈하게 무량수전 뜰을 산책할지 의문이 앞선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고 눈물이 있으면 웃음도 있으리. 짤막한 인생 희,노,애,락,속 단막극이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나 보다.
 

이 나이에 작고하신 부모님이 몹시도 그립다. 거친 손으로 양은도시락 싸 주시던 어머님이 너무 보고 싶다. 자식 손 잡아 주며 살아오면서 바람이 불면 감기 들세라 넓은 치마 속에 자식을 고이 감싸주던 어머니. 오늘따라 마음이 요동친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반짝거리는 애마가 나를 보고 손짓하는 듯하다. 배낭을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희방사, 부석사, 소수서원 ‘피톤치드’를 실 컷 마시고 제천을 향해 핸들을 돌린다. 내년에 다시 보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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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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