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 풍수원전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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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진=픽사베이) |
동양에서는 물 끝에 있는 선을 수평선(水平線), 땅 끝에 있는 선을 지평선(地平線)으로 구분해 사용하지만, 서양에서는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며 영어로 Horizon이다.
우리나라에서 수평선 볼 수 있는 명소는 동해안과 포항 호미곶(虎尾串)으로 신년 해맞이로 유명하다. 이곳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태양이 내뿜는 신성한 기운을 받아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타임 심리이다.
그러나 지평선을 보기 위한 명소는 거의 없다. 고작 여름 가을에 촌로들이 정자에 올라 곡창 평야를 관람하는 정도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지평선 보이는 곳은 호남 김제평야와 북한지역 평양평야지대《平安南道誌》 두 곳이다. 금강과 대동강의 젖줄인 곡창 평야가 형성돼,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모습은 국민에게 삶의 토대가 됐다.
지자체 시대를 맞이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문화축제가 있다. 서해안 평야지대에서는 ‘지평선 축제(김제시)’, 동해안 망상해수욕장에서는 ‘수평선축제(동해시)’가 해마다 시행해 왔다. 또 무한대의 이상을 젊은 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지평선 중학교가 김제시 성덕면에 있고, 김남중의 소설로 <수평선 학교>가 간행돼 독자에게 바다 여행을 떠난 소년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통해 배우게 했다.
‘지평선’은 분명 매력적인 단어다. 금년 6월 초 정치에 입문한 윤석열 전 총장이 김대중 도서관 방문록에 “지평선을 열다”로 썼다가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또 문학 작가들도 수평과 지평선에 대한 자작시가 종종 발표되고 있다.
김혜순 시인의 ‘지평선’ 시에서 “누가 쪼개 놓았나/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라며 저녁노을과 마주한 시인의 몸엔 붉게 물든 물이 하염없이 흐른다면 서글픔을 표현했다.
또 문근영 시인은 ‘수평선’에서 “하루 종일/입술 꾹 다물고 있다/파도가 저렇게/간지럼을 태우는데도..”라며 수평선에는 이상의 그리움이 있고, 한 획으로 그어진 수평선을 꾹 다문 고기 입술에 비유해 상상의 나래를 독자에게 심어 줬다.
광활한 지평선 평야지대는 명당이 있을까? 많은 고서를 탐독했지만, 속 시원하게 제시한 명답이 없다.
『산법전서(山法全書)』에 의하면 명당을 소명당, 내명당, 중명당, 외명당 등 4가지로 구분하는데, 이중 외명당이 평야지대를 말하는데, 구체적인 설명이 빈약하다.
또 점술가에서 흉지(凶地)를 검살(劫煞)처 포함해 9가지로 구분하는데 그 중 광야명당(曠野明堂)이 있다. 명당 앞이 광야이므로 지평선, 수평선이 보인다면 보국(保局)이 되지 않아 생기를 보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에 의한 생기가 흩어져 재앙이 닥쳐온다고 한다.
수평선 명당 용어 자체가 없지만, 바다의 경우 태양과 달의 인력으로 조수간만(潮水干滿)이 작용하는데 이것은 지리보다는 천문에 해당된다. 조수가 드나드는 갯벌생태를 관찰하면,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경계임을 알 수 있다. 일출일몰의 시간에 따라 조수가 변하듯 광활한 땅에도 명당이 되기도 하고, 흉지가 되기도 한다.
유구한 명당은 없다. 이것은 만고의 불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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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환 풍수원전연구가 |
수평선과 지평선의 공통점은 ‘하나(一)’로 귀결하는 자연조화다.
천지가 신비롭게 조화로울 때 국사가 순조롭고 국민이 즐거운 것이다.
국운상충으로 코로나 팬데믹(Pandemic)에 사로잡힌 삶에서 새 지평을 열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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