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수필] 누군들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있을까

민순혜 / 2022-10-02 15:12:26
수필가 민순혜
누군들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있을까
                                              - 수필가 민순혜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뼘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처럼 정말 그런 것 같다.

  지난해 애타던 시간이 떠오른다. 예술활동증명 기간 5년 만기를 앞두고 3개월 전부터 지속해서 재발급에 관해 문자와 메일이 왔었다. 하지만 나는 그즈음 바빠서 제출할 자료는 다 준비해놓고 미루다가 만기 1개월 전인 12월이 돼서야 서둘러서 자료를 꺼냈다.
 나는 행여 잘못하기라도 할까 봐서 직접 해당 기관에 전화해서 제출서류를 확인하고도 다시 안내문을 몇 번씩 확인하고 자료를 스캔 떠서 그날 밤 제출했다. 만기까지 한 달 남짓 남았으니 자료 검토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일찍 해당 기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문의했던 담당자가 급한 목소리로 안 된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으니 자료 5편 중에서 2편만 가능하고 나머지 3편은 안 된다고 다시 하라고 하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3편은 일부러 예술활동증명 재발급할 때 제출하려고 심혈을 기울여 쓴 신작을 발표했는데, 하필 연간 문집에 실린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계간지나 반년간지만 가능하다고 하는데 나는 당황했다. 그런데다 이미 신청서가 접수되었기 때문에 3일 이내 재접수해야 하는데 내 작품이 실린 근래 문집이 없다. 까닥하다가는 만기를 넘길지도 모를 일이다.

  속이 탔다. 책이 없는 것이 아니고 얼마 전 방을 정리하면서 철 지난 책은 모두 묶어 상자에 넣어 쌓아놓았기에 책을 꺼내려면 상자를 모두 내려서 일일이 열어봐야 했다. 엄두가 안 났다. 나는 급히 지인 몇몇에게 전화해보았지만, 출타 중이거나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 '아이코, 이를 어쩌나!' 그때였다, 섬광처럼 떠오르는 분이 있었으니 바로 최 시인이었다. 그 시인은 왠지 계간지 '시에' 문집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염치가 없다. '시에' 문학회 회원이지만 늘 먼발치에서 있었을 뿐 인사 한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지 않은가. 같은 대전에 살면서도 말이다. 무슨 낯으로 연락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망설임도 잠시, 용기를 내어 전화했다. 그러나 전화벨 소리만 크게 울릴 뿐 아무런 기척이 없다.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동안 내가 너무 버릇없이 해서 전화를 일부러 안 받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단념할 수가 없다. 나는 카톡을 보냈다.


  - 최 시인님 안녕하세요. 혹시 '시에' 문집 있으신지요. 3권을 잠시 빌려주시면 스캔하고 돌려드릴게요. '시에티카' 2017 하반기 17호, '시에' 2019 여름호, '시에티카' 2019 상반기 20호입니다.

  이 역시 아무 대꾸가 없다. 아, 이를 어쩌나, 날은 이미 어둑해졌다. 내일이 마감이니 이젠 문집을 빌리러 문우를 찾아 서울이든 영동으로 가야만 했다. 그때였다, 전화 벨이 울렸다. 최 시인이었다. 내 카톡을 받고, 낮에는 직장에서 근무 중으로 퇴근하고 집에 가서 책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전화했다고 하시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니, 그 시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라도 따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문집을 빌려서 그날 밤 스캔을 떠서 제출했다.

  한데 빌린 문집을 바로 돌려드리려고 했지만, 혹시 보완 자료가 있을 수도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제출한 후 1달이 지나고 2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나는 하는수 없이 시인님께 빌린 책을 늦게 드려서 죄송하다고 문집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 시인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지요? 빌려주신 '시에' 문집은 잘 보관하고 있어요. 예술활동증명 자료 심사가 아직 진행 중이어서요, 어찌 될지 몰라서 못 돌려드 리고 있어요. 심사 끝나는 대로 바로 돌려드릴게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시인은 기분이 언짢으신지 아무 응답이 없다. 그리고 다시 1달이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예술활동증명이 재발급되었다. 그런데 내가 또 바빠서 책을 바로 갖고 갈 수가 없어서 차일피일하다가 뒤늦게 전화했다. 시인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날 저녁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또 전화가 왔다.

   그날은 책 가져오지 말고 술이나 한잔 먹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맙던 마음이 약간 덜해졌다. 사실 최 시인을 조금 멀리 했던 것도 술 때문이다. 나는 부친이 생전에 폭주를 하셔서 아주 의도적으로 남녀 고하간에 술을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무튼 책을 핑계로 또 만나자고 하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약속 장소에 가니까 최 시인은 뜻밖에도 문학 동인 한 분 더 초대했다며 수저를 3개 놓았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최 시인은 고추장 불고기 2인분을 주문하고 불판에 고기를 구우면서 남이 말하듯 말했다. "책은 가져올 필요 없어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그 문집은 연도별로 갖고 계시잖아요? 3권 빠지면 이 빠진 것 같을 텐데요?" "뭔 이 빠진 것 같긴. 그렇더라도 괜찮아요." "그래도요." 최 시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그 책에 민 작가 수필 있잖아요. 그러니 그냥 그 책 가져요."

  나는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북받쳤다. 그 책에 내 작품이 있는데, 나는 그 책이 없으니 그 책을 내가 보관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토록 사려 깊은 뜻이 있는 줄을 모르고 내가 잠시라도 오해했던 것이 너무도 죄송했다. 이토록 훌륭하신 분을 내가 그동안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다녔던 것이 정말 죄송했다. 사람은 오래 겪어봐야 그 사람의 참마음을 안다는 말이 떠올랐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뼘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절실히 느꼈다.

 

ㅡ 『대전사랑 문고사랑』 2022 통권 제13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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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약력

대전 출생. 

2010년 계간 '시에' 수필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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